가을밤 등불빛이 그림병풍을 비추니, 손에 작은 비단부채로 반딧불을 때리네.
밤에 돌계단은 차가운 물처럼 자가우니, 침궁속에 정좌하고 우랑직녀성을 응시하네.
在秋夜裡燭光映照著畫屏, 手拿著小羅扇撲打螢火蟲。 夜色裡的石階清涼如冷水, 靜坐寢宮凝視牛郎織女星。
作者簡介: 작자간개
두목(803-852)은 자가 목지이고, 호는 번천거사이며 한족으로 경조먼년인이다. 그는 당대에 걸출한 시인, 삼문가이며, 재상 두우의 손자이고, 두종욱의 아들이다. 당문종 대화2년 26세에 진사하고, 홍문관교서랑에 임명되었다.
후에 관서감찰사 막부와 회남절도사 막부로 갔고, 이인 국사관에서 편집하고, 선부, 비부, 사후원외랑과 황주, 지주 목주자사등 직을 가졌다. 만년에 장안남 벌천 별서(농사짓는 별장)에서 살았다.
후세에 두벌천이라 칭하며, 시가에 칠언절구가 뛰어나고, 역사를 노래하며 감정을 읊음을 위주로 했고, 시는 영특하고 준수하였고, 경제의 뜻을 많이 다루었고, 만당에 성취한 높은 인물로서 소두(小杜)라 칭하여 이상은(李商隱)과 더불어 소이두(小李杜)라 부른다.
어머니로부터 듣기를, “두목지의 풍채”란 말이 있었다고 하니, 혹시 외조부님이나 어머니 한문 정선생(丁先生)으로 들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의 비범한 풍채를 보이고 싶었다.
杜牧(公元803-約852年),字牧之,號樊川居士,漢族,京兆萬年(今陝西西安)人。杜牧是唐代傑出的詩人、散文家,是宰相杜佑之孫,杜從郁之子。唐文宗大和二年26歲中進士,授弘文館校書郎。後赴江西觀察使幕,轉淮南節度使幕,又入觀察使幕,理人國史館修撰,膳部、比部、司勛員外郎,黃州、池州、睦州刺史等職。因晚年居長安南樊川別墅,故後世稱“杜樊川”,著有《樊川文集》。杜牧的詩歌以七言絕句著稱,內容以詠史抒懷為主,其詩英發俊爽,多切經世之物,在晚唐成就頗高。杜牧人稱“小杜”,以別於杜甫,"大杜“。與李商隱並稱“小李杜”。
금년 9월 10일이 음력으로 8월 15일로서 추석, 한가위 날이었다.
그런데 내가 바로 9월 10일에 추석 시를 올리려고 준비하였지만, 뜻밖에 심한 태풍, Himnanor가 들이쳐서 국내에 많은 사상자가 생겨서 한달로 연기하였다가 오늘 싣는다.
내년 부터는 이 좋은 명절에 태풍같은 재해가 없기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