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G Changling – Bedchamber Regret 英文翻譯 / English Translation﹕
There was a young woman in her bedchamber who had not a thing to worry,
On a spring day she dressed up to visit a fine edi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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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udden glance of fresh willowy banks on the wayside
Made her regret ever urging her husband to pursue high of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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注释译文 (주석역문)
閨怨(규원):少婦的幽怨; 젊은 지어미의 그윽한 원망。
閨(규),女子卧室; 여자의 침실이며 여자를 빌려서 지적한다,借指女子。一般指少女或少婦。古人“閨怨”之作,一般是寫少女的青春寂寞,或少婦的離別相思之情。以此題材寫的詩稱“閨怨詩”。
不知愁(부지수):근심을 몰랐다. 劉永濟《唐人絕句精華》中“不知”作“不曾”。
凝妝(응장):盛妝; 성장。
翠樓(취루) :翠樓即青樓; 청루,古代顯貴之家樓房多飾青色,這裏因平仄要求用“翠”,且與女主人公的身份、與時令季節相應. 指兩層或兩層以上的房子: 이층 혹은 이층이상의 집. (고대애 귀한 가문의 집은 많이 푸른 색으로 장식하였다. ) 여기서 여주인의 사회적 신분을 말한다. )
陌頭(맥두):路邊; 노변 즉 길가。
柳(유):諧音(homophonic; 동음)으로 “留(류 즉 머물다)이니”,그리워 함이 머물은다. 즉 이별의 근심을 일으킨다. 寓有留戀之意,觸動離別之愁。
悔教(회교):後悔讓。후회를 승인하다.
覓封侯:為求得封侯(제후(諸侯)를 봉(封)함.)而從軍。覓,尋求。
閨閣(규각): 내실, boudoir.
白話譯文(백화역문)
閨閣中的少婦不知愁是什麼滋味;규각속 젊은 지어미는 근심을 몰랐는데,
春光中濃妝豔抹,獨自登上翠樓。봄날 성장하고 취루로 혼자 올랐도다.
忽然望見路邊的楊柳吐青色,홀연히 길가 버들이 청색을 토함을 보니,
悔不該叫夫君為求功名征戰邊關。 부군에게 전투지 변관에서 공명을 구하라고 청했음을 후회하도다.
創作背景(창작배경)
당대전기(唐代前期)에 국력이 강성하여, 종군원정(從軍遠征)하여, 변방에서 공을 세워, 당시인들(當時人們)이 구하던 제후(諸侯)가 하나의 중요한 지름길이었다.
“공명은 오로지 말위에서 취하니, 진실로 영웅이요 장부로다.”[“功名只向馬上取,真是英雄一丈夫”] 이는 당시 많은 사람들의 생활이상(生活理想)이었다. 왕창령의 “규원”은 이러한 환경에서 그렸다. 개원15년(727년)[ 開元十五年(727年)]에 왕창령은 그 전후로 서북변방으로 가서 이 시를 썼겠다.
名家點評(명가점평; Comments by celebrities)
명대문학가고린(明代文學家顧璘): 궁전규뤈작자가 많은데, 청루곡 2수[《青樓曲》二首]와 더불어 이편(此篇)같은 글은 아직 있지 않았고, 우아하고 또 우아하여, 명백하고 간단하여, 절구중 최상품이다.
명말시인서증(明末詩人徐增; 이시에서 오로지 “규중소부(閨中少婦)를 보면, 이 전체이야기가 여기에 묘사되어있다. 홀견맥두양류색(忽見陌頭楊柳色)의 색(色)자를 씀이 묘하다. 유색(柳色)은 황(黃)에서 녹(綠)으로, 녹(綠)애소 청(青)으로 가고, 부인은 얼굴색이 홍야(面色紅冶; complexion red)로다.
명말청초학자황생(明末清初學者黃生); 감시한별(感時恨別: 시절을 느끼고 이별을 한하다)는 시인이 많이 썼으나, 마지막 2구는 부지수(不知愁) 3자로써 후에 뒤집혀서 어경(語境)이 일신하고, 정사(情思)가 완절(婉折; Graceful) 즉 우아해졌다. 규정의작(閨情之作)은 이 한수를 응당 밀어 제일로 만들었다. 이는 곧 국풍(國風)에서 물에 느낄 때 군자를 생각하는 뜻이며, 정을 품음이 심히 옳고, 그 기분을 품음이 심히 길다. 당인의 절구는 풍아유음(風雅遺音. 국풍과 대아의 유산)을 실제로 구비하였다.
명말청초학자당여순(明末清初學者唐汝詢); 이별을슬퍼함은 종군보다 더 심함이 없으니, 이리하여 당인의 규원(唐人閨怨)은 대저 부인을 부름과 같다. 근심을 앎은 거듭 응장(凝妝)을 할 수없다. 응장하고 누에 오르니 이는 분명히 근심을 몰랐음이다. 그러나 한번 버들색을 보고 후회하는 마음이 일어났으니, 공명의 바램은 멀어지고, 이별의 정은 급해 진다. 벌레소리듣고 만남을 생각함은 남국의 바른 소리요, 훤초를 보고 근심하는 마음은 동으로 이사감에 변한 상태로다. [蟲鳴思覯,南國之正音;萱草痗心,東遷之變調。] 이 규중의 작이 근체의 이남(二南)일까?
청대학자오서영(清代學者吳瑞榮) : 경관에 접촉하여 사람을 생각함은 정성스런 풍채요, 스스로 대아(大雅)로다.
청대관원송종원(清代官員宋宗元): “부지(不知)” “홀견(忽見)” 4자(四字)는 시 전체의 관건(關鍵: 빗장과 자물쇠. 사물(事物)의 가장 중요(重要)한 곳)이다.
清代官員宋宗元:“不知”“忽見”四字,為通首關鍵。(《網師園唐詩箋》) 중국근현대학잦유폐원(中國近現代學者俞陛雲): 이시는 직접 묘사하지 않고, 제3구에 이르러 “홀견; “忽見” 두자로 갑자기 한번 회전하여서, 시 전체가 생동하게 되었다.
중국근현대고전문학가유영제(中國: 現代古典文學家劉永濟): 시인은 붓아래 천진한 소부의 정태를 생생히 묘출하였으니, 인민이 징역의 고통은 말 밖에 스스로 나타냈으니, 시인은 자기의 본위치를 범하지 않았다.
원상해호강대학교수유수진(原上海滬江大學教授喻守真): 별(別)울 멀허자얺고 별정(別情)이 스스로 보이고, 수(愁)를 말하지 않고 수사(愁思)가 갑절로 증가하다.
중국근현대문예이론가마무원(中國近現代文藝理論家馬茂元): 제1 버들은 봄날 푸르게 생기니, 봄날 응당 규중에서 환락하는 계절이라, 양류색을 보고 생활중 고독지감에 이르게 한다. 제2 고대풍속에 이별 때 행인에게 양류를 꺾어 주었으니, 柳의 발음이 留와 같아서, 그리움이 오래간다는 뜻을 기탁하였다. 이 버들색으로 인하여 회상을 일으키고, 이별의 근심을 일으켰다. 이리하여 제1구의 부지수(不知愁”는 서로 호응(相呼應)한다.
중국근형대고전문학연구가부유생(中國近現代古典文學研究家傅庚生): 소부(少婦)의 풍운(風韻; Charms)을 생생히 그렸다.
作者簡介(작자간개)
왕창령은 자가 소백(少伯)이고 장안인(長安人)이었다. 개원15년[開元十五年(727년)] 진사합격하였고, 사수위(汜水尉)를 받았고 또 교서랑(校書郎)도 받았고, 후에 강령승(江寧丞)에 임명되었고, 또 사건에 인하여 용표위(龍標尉)에 좌편되었기에, 세칭 왕강령과 왕용표라 부른다.
안사지난(安史之亂)후에 자사염구효(刺史閭丘曉)로부터 죽음을 당하였다.
5언고시(五言古詩), 5와 7언절구(五、七言絕句)좋은 작품이 많고, 그중 절구에 최고를 이루었다. 시경에 웅혼개활(雄渾開闊)하여, 스스로 자신의 일격(一格)을 이루었다.
명왕세정(明王世貞)이 논하기를, 성당 7언절구에서 오로지 이백과 가히 승부를 다툴 정도였고, 신품(神品)으로 벌일 정도였다. 현재 시 180여수가 전당시(全唐詩)에 남았고, 명인이 편찬한 왕창령집(王昌齡集)이 있다.
Kwan Ho Chung - August 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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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성당시절에 유명한 시인 왕창령의 작품이다.
당나라의 전성시기에 나라에서는 서역지방으로 국토를 넓혔다.
많은 젊은이들을 뽑아 군에 보내서 그 험악한 사막지역에서
원주민과 싸움이 그치지 않았을 때였다.
여기 나온 젊은 여인은 근심과 고생을 몰랐고,
신랑에게 "당신도 누구처럼 군에 나가서 큰 공훈을 이루어 제후가 되어서
돌아오세요."하고, 여러차례 졸랐던 모양이다.
이렇게 보낸 신랑은 금의환향(錦衣還鄕)대신 여러해가 지나도
돌아오기는 커녕, 소식조차 없다. 뒤늦게 후회하니 무슨 소용이 있는가?
후회막급(後悔莫及)이 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