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1 12:27
古從軍行 李頎 고종군행 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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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從軍行 李頎 고종군행 이기 白日登山望烽火,黃昏飲馬傍交河。 백일등산맘봉화, 황혼음마방교하. 行人刁斗風沙暗,公主琵琶幽怨多。 행인조두풍사암, 공주비파유원다. 野雲萬里無城郭,雨雪紛紛連大漠。 유운만리무성곽, 우설분분연대막. 胡雁哀鳴夜夜飛,胡兒眼淚雙雙落。 호안애명야야비, 호아안루쌍쌍락. 聞道玉門猶被遮,應將性命逐輕車。 문도옥문유피차, 응장성명축경거. 年年戰骨埋荒外,空見蒲桃入漢家。 연년전골매황외, 공견포도입한가. |
옛 종군의 노래 성당후기 시인 이기 대낮에 산에 올라 봉화를 바라보고, 황혼에 교하 부근에서 말을 물먹이다. 행인은 조두를 때리며 바람과 모래로 어둡는데, 공주가 뜯던 비파소리에 그윽한 원망이 많도다. 광야구름은 망망하여 만리성곽은 보이지않으니, 비와 눈은 분분히 가없는 대사막으로 내리도다. 오랑캐 기러기는 밤마다 슬피울며 날아가고, 오랑캐 병사 두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네. 듣기에 옥문관이 이미 차단되었다고 하니, 전사의 목숨은 가벼운 수레를 따라 갈 뿐. 해마다 전사의 백골이 황야로 묻히건만, 서역포도는 헛되이 한나라궁으로 들어오네. |
細君公主(세군공주) 琵琶(비파)
At dusk we lead the horses to the Border River for water. Soldiers dread the sound of midnight bronze bells, for gloomier than dust storms they are, Like the Han princess's lute play during her life in the Wusun Tribe, grievous and bitter. In the wild under clouds that stretch on for miles, there is not a trace of a township, Heavy draughts of snow fall like rain over the boundless desert. Wild geese cry their way through overhead night after night, Evoking sadness and bringing tears to even the barbarians. They say that still shut off from traffic is the Pass of Jade, Those sent out there can only soldier on and more battles brave. Ever more remains are buried in the wilds year after year, Vainly in exchange for Hun's submission to Han's Court of allegiance and grapes.
白話譯文(백화역문); 歷代點評(역대점평) 당시선맥회에서 이기의 이작품은 실제로 많은 풍자의 뜻이로다. 오산민(吳山民) 가로되: 골기가 늙을 수록 강하다. (骨氣老勁). 당풍정(唐風定)에서 음조는 쇠와 옥의 소리가 나오고, 풍정은 맑고도 바람을 일으키네. 모두 진골(真骨)이 홀로있으니, 질로써 승문(勝文)이로다. 作者簡介(작자간개) 이기(李頎)는 당대시인이며, 조군인(趙郡人)이다. 소년시에 일찍이 하남등봉(河南登封)에 우거[寓居; 정착(定着)되지 아니하고 임시(臨時)로 삶]하였다. 개원13년[開元十三年(725年)] 진사급제하고, 신향현위(新鄉縣尉)로 임명되었고, 만년에는 봉향[幫鄉; 보좌했던 마을]에 은거하였다. 그는 왕유, 고적, 왕창령등[ 王維、高適、王昌齡等] 저명한 시인과 더불어 왕래를 하였고, 시명(詩名)이 자못 높았다. 그 시의 내용은 풍부하고 변새시(邊塞詩)를 썼던 바, 풍격이 호방하고 강개하고 비량하여[風格豪放,慷慨(悲涼: 처량하고 쓸쓸하다)], 칠언가행(七言歌行)에 더욱 특색을 구비하었다. 당재자전《唐才子傳》에 그의 생평사적을 볼 수있다. 이기시집《李頎詩集》이 있고, 전당시《全唐詩》에 그의 시 3권이 있다. |
My Friends 여러분. 나는 한문학 전문인이 아닙니다.
그 옛날 내가 어렸을 적에 나의 어머니께서 가끔 한문글을간 가르쳐 주셨어요.
그렇지만 학교공부하기도 바쁜데 여기에 별로 시간을 보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좋아했던 글 특히 시갸 있었지요.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한글학자들이
한글전용을 주장하여서, 부산피란 당시 대학생들로 국한문으로 된 신문을
제대로 읽지 못할 지경이었지요.
미국뉴욕으로 자리를 옮겼을 적에 Manhattan에 있는 Chinatown에가서 중국책방에서
돈을 아끼지 않고 그 귀한 책을 많이 샀지요.
그후 퇴직후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제대로 그 작품들을 읽고 또 정리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열고 보면 나의 Webpage에 좌측에 한시 원문, 우측의 나의 해석이
나오는데 이건 내가 발명한 방법이지, 아직까지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한 전문가는
없다고 믿습니다. 한번 읽어보시고 평가하여 그것을 남겨 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