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얏에 관하여
요즘 우리는 오얏이란 말을 별로 듣지 못하고, 게다가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전혀 알지 못하는 글자가 되었다.
그런데 오얏 “이”자는 지난 이천년 이상 중국과 한국에서 사용한 글자다.
내가 처음으로 들었던 때는 어렸을 적 어머니가 자신의 성씨를 알려주시기를, 오얏 이씨라고 하셨다.
李字(이자)는 오얏 이자이며, 옛 옥편이나 민중서관발행의 한자대자전에서 李字는 ‘오얏 나무 리’ 혹은 ‘성 리’로 되었는데
한글사전에는 ‘오얏’을 ‘자두 혹은 자두나무의 잘못’이라고 했다. 여기에 관한 논란이 ‘국어산책 오얏론(論)’에 자세히 나왔는데, 1988년 문교부 규정으로 자두를 표준어로 삼고 오얏이란 단어를 버렸다.
여기 오얏론에 의하면 최근에 와서 오얏과 자두 사이에 논란이 많았다.
오얏은 고대로부터 내려 온 이름 높은 꽃나무였고, 자두는 최근 1920년경에 서양에서 수입한 과일이름이고 물론 그 꽃도 관광용이다.
이 둘이 식물학적으로 많이 가깝고 어떤 경우에는 중복도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1988년 1월에 오얏을 사어(死語) 로 규정하여 버리고, 수입한지 70년도 안되는 외래 품종의 이름을 표준어라고 정하였다.
오얏 이자(李字)란 성씨는 내가 알기만해도 한나라 무제 당시에 이광(李廣, ? ~ 기원전 119)이란 중국 전한의 장군이 있었고, 그 후 대당을 세운 이연과 이세민이 그의 후손이라고 되어있으며, 우리나라에선 이태조 이성계 역시 오얏 이씨다.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김(金)씨 다음으로 많은 성씨가 아닌가?
그러니 그 성씨가 중국과 한국에 내려온 지는 2000년이 넘었다.
이는 이씨 성에 관한 역사이며, 이 글자는 오얏이란 열매, 꽃 그리고 나무를 가리키는데, 이 나무가 나온 시는 적어도 당대에 대단히 유행하였다.
두가지 예만 들겠다. 1. 洛陽城東桃李花 飛去飛來落誰家 낙양성동도리화는, 비거비래낙수가오?
이는 劉希夷(유희이)의 작이며 그의 년도는 AD 651-?이다. 뜻은 낙양성의 동편에 복사꽃, 오얏꽃은 날아가고 날아와서 뉘 집에 떨어지는고?
2. 桃李花開覆井欄 朱樓落日捲簾看 도리화개복정난하니, 주루낙일권렴간을. 이는 崔顥(최호)의 작으로 년도는 AD 704-754이다.
이 뜻은 복사 꽃, 오얏꽃이 피어 우물 난간을 덮고, 붉은 누각 떨어지는 해에 발을 걷고 바라보네.
주목할 점은 꽃이 만발함을 표현할 때에는 복사와 오얏꽃을 함께 썼고, 적어도 1500년 동안에 썼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자두는 관상용도 되지만 주로 인기있는 식용과일이며, 오얏은 대단히 아름다운 나무꽃으로 이름이 높았지만 그 맛이 새콤하여 과일로 취급되지는 않았다.
그러니 상당히 다른 두 종류를 하나라고 주장하여 1500년 내지 2000여년간 쓰던 이름 오얏을 폐기하였음은 한글학회의 경솔하고 짝이 없는 행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요즘 말처럼,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빼 버린 격이 되었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게다가 이(李)씨를 오얏 이씨라고 부르지 않고, 자두 이씨란 해괴한 말로 부르라는 말인가?
여기에 학명, 꽃과 열매를 제시하겠다.
오얏: Prunus triflora Roxburgh(한글 학회의 큰사전) 자두: Prunus domestica or Prunus salicina(한글 학회) 다음에 오얏과 자두의 열매와 꽃의 이미지를 싣겠다.
동문 제위께:
제가 SNU-CM-AA 홈페이지에 작년 5월 31일에 실었던 "오얏에 관하여" #8642를
부득이 한 이유로 오늘 이리로 이사하고 그 자리에는 다른 소재를 옮겼습니다.
설명하자면 너무 장황하여 기회가 있으면 시도하겠습니다.
그곳에 글을 남기신 분께 글을 옮길 재주가 없어서 그냥 두었고
그래도 옛 제목만은 거기에 있고 새 제목과 함께 두었습니다.
그럼 좋은 겨울 날 가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