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20 09:06
https://dspace.ewha.ac.kr/handle/2015.oak/261718
1963년 군사정부의 민정이양과 미국의 개입, 이화대학교 사학과 대학원
조한빛 학사논문 2022년
1961년 5.16 쿠데타 군사정권이 2년 후 민정이양을 혁명공약으로 국민에게
약속한 결정적인 배경이 미국의 압력이었음을 미국 국무부 서류를 중심으로 잘 밝
히고 있는 논문이다. 압력의 지렛대는 원조 감축이었다.
혁명세력의 모사였던 김종필은 민정이양을 강요하는 미국의 압력을 피하려고 백
방으로 노력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이 공화당 창당이었다. 군부 세력이 군복을 벗고
민간인으로 둔갑하여 공화당을 바탕으로 새 민간정부의 권력을 장악하는 방법이
었다.
군부세력안에서 군인들이 다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는 반 김종필 세력이
등장 했다. 이들은 미국 측과 접촉하여 미국이 김종필에게 압력을 넣을 것을 종용
했다. 미국은 박정희에게 김종필 제거를 요구했다. 그래서 박정희은 김종필을
외유시킨다. 박정희가 자기에 도전하는 2인자 김종필을 세력권에서 추방했다는 항간
의 인식은 오해였다. 그를 압박한 주체는 미국이었다. 반김종필 세력이 자발적인 것
인지 아니면 미국이 심어놓은 군인들인지는 확인 할 수 없지만....(?)
군부세력의 권력을 연장하려는 김종필과 민정 이양을 지양하는 미국과의 숨박꼭질
은 계속되었다. 이와같이 박정희은 쿠데타 초기 부터 미국의 조정에 시달렸다. 결국
미국의 안보이는 손에 유명을 달리했다. 이래도 한국이 독립국가라고 할 수 있을 까?
아직 멀었다. 현재는 한국이 완전한 독립국가가 되는 머나먼 여정의 초기 단계라고
생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OyJ7gQ7gEvk
워커 힐 서울
워커 힐은 오늘날 한국에서 제일 좋은 고급 호텔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 호텔은 자랑 스럽지 못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쿠데타 당시에 미국에게 약속했던 2년 후 민정 이양을 지키고 자신
들의 정권 연장을 위해서 군복을 벗고 자신들이 민간인이 되어 민정
의 주인 되려는 공작을 쿠데타 직 후 부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서
는 자신들의 정당이 필요했다. 그 정당 즉 공화당을 만들기 위해서
자금 마련을 위한 공작을 했는데 이것이 소위 4대 의혹 사건이다.
주가 조작으로 인한 증권파동, 워커힐 사건, 새나라 자동차 사건,
빠찡꼬 사건이었다.
워커힐 공사에 군인과 죄수를 동원했다. 공사 장비는 군 장비를
가져다 썼다. 모두 공짜였다. 그러나 예산은 모두 지불한 것으로
되어 있다. 차액은 정치 자금이었다. 그리고 떡 고물은 착복했다.
공사에 필요한 자제는 중정이 무과세로 일본에서 수입했다. 여기서
생긴 차익도 챙겼다.
그렇지만 요지음 워커힐에 가보면 정말 좋다. 세상은 요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