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적어도 뽕짝 한 두곡을 1 절부터 3 절까지 부를 수 있어야 한국인
으로 인생을 말할 자격이 있다”고 했다.
한국 가요사에서 불멸의 이름이 하나 있다면 일제 강점기때부터 70 여년간
작사가, 가수,한때 작곡, 극작가로도 활동했던 반야월 선생(1917-2012)으로, 가수
진방남, 기타 여러가지 다른 예명, 필명으로 활동하였다.
적어도 5,000곡 이상을 발표 하였다고 알려 졌으나 수많은 예명으로 발표,
정확한 추적이 힘들 듯하다.
“노래하자 하르빈, 춤추는 하르빈, 아카시아 숲속으로 꽃마차는 달려간다”
로 시작되는 만주 유랑시절의 힛트곡 꽃마차(나중에 하르빈을 서울로
바꾸었지만), 6.25 때 미아리 고개에서 어린 딸을 잃고 쓴 “단장의 미아리
고개” 등의 가사, 그가 가수로 부른 “불효자는 웁니다”, 해공 신익희
선생 서거때 많이 불려 졌던 “유정천리”----등 그가 작사, 또 불렀던 많은 노래
작품들은 한국 민족의 역사를 이야기 해주고, 한국 사람의 생활시(生活詩)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듯 하다.
문학,미술, 음악 어떤 정통 예술가보다 아마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었을 것이 틀림 없음으로, 최근 말썽으로 유명해진 어떤 유명 시인,
소설가, 영화감독, 연출가들 보다 더 진솔한 예술가로 추앙해도 잘못이 아닐
것이다. Bob Dylan 같이 노벨상은 못 받겠지만, 앞으로 한국 정부는 이런
분들의 사후 이런 삶에 걸맞는 예우를 해야되지 않을까??
반야월 씨는 한국 곳 곳에 가장 많은 “노래비”를 갖고 있는 예술가이다.
오늘 같이 봄비가 오는 저녁에는 “유성기(留聲器)”에 나팔 스피커 앞
강아지 한마리 앉아 있는 그림있는 그 옛날 “빜터 레코드”를 걸어 놓고,
“손목인”의 아코디온 반주로 흘러나오는 칙칙한 음색의 뽕짝 한 곡이라도
들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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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월 보다 한 세대 후의 작사 자곡가가, KS Mark, 서울 음대 출신 의 박춘석씨이다.
오랜 동안 CVA 로 고생하다 돌아갔을때, 패티김, 남진, 문주란, 이미자 등 진심에서 나오는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미국 있을 때 TV 에서 보고 감동 했던 기억이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