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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l 아버지의 찔레꽃

2005.06.03 06:41

오세윤 Views:6917


                        아버지의 찔레꽃

                                                                             오 세 윤


중국인들은 어디서나 마작을 한다. 작은 가게들이 밀집한 시장 거리의 한 귀퉁이에서, 상점이 즐비한 대로변의 처마 밑에서, 낮이고 저녁이고 시도 때도 없이 마작을 한다. 도교(道敎)의 발상지인 학명산(鶴鳴山)의 황폐해가는 도관을 찾았을 때에도 찔레 비슷한 넝쿨이 꽃을 피우는 그 곁에서, 아침나절임에도 웃통을 벗고 앉아 마작을 하는 중국인남녀를 예외 없이 볼 수 있었다. 마작과 찔레꽃, 관내를 둘러보기보다 나는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를 먼저 떠올렸다.

광복 다음해의 3월 우리는 남으로 왔다. 징발을 피해 해주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무인도의 은밀한 곳에 숨겨 놓았던 증기선을 찾아온 아버지는, 한밤중에 이웃들 몰래 도둑처럼 이삿짐을 배에 실었다. 조선업을 하면서 수리공과 부품의 운송수단으로 쓰던 길이 3~40m의 똑딱선, 가끔은 가족들과 주말낚시를 즐기곤 하던 작은 증기선이었다. 잠에 취해서도 두려워하는 식구들을 태우고 새벽안개가 옅게 퍼진 빈 항구를 북극바다의 유령선처럼 무장무애하게 소리죽여 빠져 나갔다. 아버지와 어머니, 나와 여동생 둘, 겨울에 태어난 남동생에 할머니가 가족의 전부였다. 이태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로 큰아버지 댁에 기거하던 할머니가 뜻밖에도 월남 행을 함께 하셨다. 가냘픈 몸피에 언제나 하얀 치마저고리를 정갈하게 입고 계시는 할머니는 곁에만 계셔도 언제나 마음이 흐뭇했다.
뒤늦게 낌새를 챈 로스께가 연안의 초소에서 몇 발의 총을 쏘아댔지만 배는 이미 사정거리를 벗어나 있어 전혀 위험이 되지 못했다. 장난감 총알 같은 몇 개가 배의 고물 훨씬 못미처에 퐁퐁 물위로 떨어졌다. 품에서 간난 동생을 떼어내 할머니에게 내어드리면서 그제서야 어머니는 손바닥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바깥바다는 다행히 파도가 심하지 않았다. 그렇긴 해도 바다는 역시 바다여서 물결이 제법 자장가 역할을 할 정도로 배를 흔들어댔다. 아버지를 제외한 식구 모두 선실에서 모자란 잠을 채우고 깨었을 때는 배는 벌써 한강 어귀에 들어서 있었다. 선원 하나가 강물을 길어 해주던 김이 모락모락 나던 하얀 밥의 달큼한 맛, 두 그릇은 먹은 듯 볼에 닿던 차가운 강바람과 함께 당시의 정경이 지금 기억으로도 생생하다.
마포나루에 내려 트럭으로 이미 아버지가 마련해 놓은 사직동 집으로 바로 들어왔다. 기역 자 형 기와집, 고향집에 비해 마당이 옹색하게 좁았다. 앉은 자리 또한 서북향이어서 해가 오래 머물지도 않았다. 겨울이 견디기 힘들게 추웠다. 그 집에서 3년을 살았다. 두해 터울로 동생들이 태어나다 보니 마당에는 언제나 기저귀가 널렸고 배릿한 아기 똥냄새가 집안어디에나 배어 있었다. 짧은 햇살에 기저귀를 말리기 위해 할머니는 아침마다 동동거리셔야 했다. 대부분이 기저귀빨래인 양은 다라이를 펌프 옆에 놓고 할머니는 매일아침 쉴 틈 없이 몸을 움직였다. 선잠깬 눈을 비비고 나가 펌프질을 해 드리다보면 할머니는 똥물이 노란 기저귀를 돌에 안차게 비벼내어 몇 번이고 헹구고 또 헹구었다. 대문을 나설 쯤 이면 벌써 커다란 양은솥에 빨래를 삶으며 그때서야 겨우 허리를 펴고 서서 나의 인사를 받으셨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골목에서도 우리 집은 유난스레 눈에 띄었다. 장대로 높게 받쳐진 빨랫줄에는 하얀 기저귀들이 무슨 깃발이나 되는 것처럼 담장위로 펄럭펄럭 바람에 날리고 있기가 다반사였다. 비가 오는 날만이 예외였다. 기저귀를 걷어내려 기름하게 사각형으로 접어 아랫목에 쌓아놓는 건 나와 바로 아래 여동생의 몫이었다.
뽀송뽀송하게 마른 새하얀 소창 기저귀에서는 더 이상 동생의 똥냄새도 지릉내도 나지 않았다. 코에 갖다대면 따뜻한 햇살 냄새만 났다. 손바닥에 닿는 감촉도 새롭고 친근했다. 옆자리에 앉은 부잣집 딸 미화의 공책종이처럼, 바삭바삭하면서도 부드러워 한차례씩 뺨에 대고 문지르다보면 간난동생의 냄새, 어머니의 냄새, 할머니의 냄새들이 모두 섞인 그리운 냄새가 났다.

이태가 지나고 난 봄, 할머니는 몸이 불편하신데다 큰집이 걱정된다며 다시 월북하여 해주의 큰아버지 댁으로 되돌아가셨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월남하기 이전에나 가끔 하던 마작을 다시 시작했다. 며칠씩 밤을 새우기도 했다. 집에는 새로 사귄 친구 분들이라며 낯선 사람들이 찾아와 밤을 새우고 가기 일쑤였다. 모르는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와 밤을 새우는 아버지도 아버지려니와 진하게 나는 담배냄새가 때로 역겹도록 싫었다. 밤참을 해 내느라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보는 것도 힘들었다. 꾀를 썼다. 너덧 차례, 아버지의 마작 곽에서 몇 쪽을 훔쳐내어 몰래 아궁이 깊숙이 던져버렸다. 물어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화는 나셨지만 증거를 찾지 못한 아버지와 손님들은 그 뒤로 집에서는 마작을 하지 않게 됐다. 대신 밖에 나가 남의 집에서 하고 사나흘 만에 들어오시는 게 예사가 되었다. 이모부와 하던 자동차사업도 시들해진 눈치였다. 그 다음해 4월에 우리는 사직동 집을 떠나 영천으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사업을 접고 친구 분 회사에 취직을 했다.
5월 하순, 화창한 일요일에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임진강변으로 낚시를 갔다. 뒷자리에 나를 태운 아버지는 가는 내내 월북하신 할머니와 고향이야기를 했다. 지나는 길가에는 하얀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사방이 온통 향기로 진동했다. 찔레넝쿨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신 아버지는 나를 뒷자리에 그대로 둔 채 무더기로 핀 꽃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허리를 구부려 꽃 냄새를 맡던 아버지가 뜬금없이 뜻 모를 말씀을 했다.

“네 할머닌 찔레꽃 같은 분이란다.”

할머니가 찔레꽃 같다고? 궁금했다. 아버지에게 물었다.

“왜 할머니가 찔레꽃 같아요?”

얼굴을 들어 잠시 하늘을 바라보고 난 아버지가 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차분하게 말씀하셨다.

“언제나 흰옷을 즐겨 입으시는 데다 오죽 깔끔하시냐, 마음은 또 얼마나 온화하시냐. 마치 찔레꽃 꽃말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래요?” 나는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짐작을 하신 듯 아버지가 더하여 말씀을 계속했다.

“또 있지. 내 동생, 즉 네 삼촌이 아파서 사흘씩이나 40도가 넘게 열이 펄펄 끓자 단지(斷指)까지 해서 피를 먹여 살리신 적도 있단다. 찔레가시처럼 맵기도 한 분이지.”

나도 광복군에 나가 싸웠다는 삼촌이야기는 여러 번 들어 알고 있었다. 광복이 되고도 삼촌은 돌아오지 않았다.

“삼촌은 살아 있을까?” 혼잣말처럼 아버지에게 물었다.
“죽은 게야, 그러니 소식이 없지.”
“할머니가 아픈 것도 삼촌 때문인가 봐.”

왜 할머니는 다시 이북으로 돌아가셨을까, 아파서만 돌아가셨을까? 혹시-

“삼촌을 기다리느라고 고향으로 돌아가신 건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어렵게 대답을 마친 아버지는 다시 또 멀리 북쪽하늘을 한동안 쳐다보다가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으셨다. 진한 향기에 취해서일까, 아버지의 자전거가 잠시 비칠비칠 흔들렸다.

강가에 닿아서도 낚시질에 신나하는 나와는 달리 강 건너 산 위쪽으로 멀리 구름만 자주 바라보시고는 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가시에 손바닥이 마구 찔리고 손등이 심하게 긁히는 것도 아랑곳 않고 찔레꽃을 한 다발 가득 꺾어 자전거 핸들에 묶었다.

“할머니도 찔레꽃을 좋아했어요?”

피가 나는 손등을 수건으로 누르고 있는 아버지에게 불쑥 물었다.

“그럼 좋아하셨지. 찔레꽃이 하얗게 핀 달 밝은 밤이면 자주 뒤울안에 나가 꽃 냄새를 맡으며 혼자 서성이고는 하셨단다."

“아, 그게 찔레꽃이었구나.”

“뭐가 말이냐?” 아버지가 궁금한 듯 물으셨다.
“큰 아버지집 뒤울타리 말이어요."

“그렇단다. 할머니가 찔레꽃을 좋아하시는 걸 알고 할아버지가 찔레넝쿨로 울타리를 만드셨단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가져온 찔레꽃을 작은 오지항아리에 몽땅 꽂아 대청마루구석 뒤주위에 놓으셨다. 며칠이 지나 꽃잎이 떨어져 볼품이 없어진 다음에도, 어머니가 곱지 않게 눈살을 찌푸려도 아버지는 시들은 꽃다발을 쉽게 치우려하지 않으셨다. 그해 겨울에도 아버지는 마작을 했다. 5월이 오자 다시 또 나를 데리고 임진강변으로 낚시를 갔다. 지난해와 똑같이 한 아름 찔레꽃을 꺾어왔다.
다음 해 5월의 끝 주말, 그날도 아버지는 이틀째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산길에 찔레꽃이 탐스럽게 피어있던 생각이 났다. 아침에 일어나자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윗동네의 한 작은집 방안에서 아버지는 핼쑥해진 얼굴로 나를 맞았다. 방안에는 담배연기가 자욱했고 한쪽 구석에는 꽁초가 수북이 쌓인 커다란 재떨이가 세 개나 놓여있었다. 나무라지 않고 수굿이 따라 나오시는 아버지는 꾸부정해진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셨다. 홀쭉하게 살이 빠진 볼 아래로 뾰족해진 턱에는 염소수염이 볼품없게 자라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이다음 커서도 나는 절대로 마작은 배우지 않겠노라고, 근처에도 가지 않겠노라고 그때 굳게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대학병원 인턴시절, 동료들 대부분이 숙소에서 마작을 배워 즐겼어도 나와 몇몇은 단 한차례도 거들떠보지를 않았다.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찔레꽃이 폈어요. 낚시 안가요?”

순간 아버지는 깜짝 놀라시는 듯 했다. 노여운 듯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아버지의 눈빛에는 적지 아니 부끄러워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6월 첫 주에 낚시를 갔다. 찔레 덤불 아래에는 벌써 꽃잎이 수북이 떨어져 있었다. 그 뒤로 아버지는 다시는 마작을 하지 않으셨다. 다만 딱 한번, 셋째가 대학을 입학하여 나와 여동생 둘이 대학을, 그 아래로 고등학교 둘, 나머지 둘이 중학생이 되었을 때 한차례, 등록금이 벅찬 아버지는 궁여지책으로 마작을 했다. 당시 아버지는 이름 있는 개인회사의 인사부 부장으로 계셨다.
토요일 아침, 출근을 하시면서 나에게 일렀다. 일요일 오후 4시쯤 어디어디로 오라고 하시곤 굳은 표정으로 현관을 나가셨다. 다음날 4시에 약속된 곳으로 갔다. 다른 회사의 숙직실이었다. 마작을 하는 한 옆에 아버지는 웅크린 채 새우잠이 들어 있었다. 담요 한 장도 덮고 있지 않았다. 나를 본 아버지는 언제 잠이 들었었냐는 듯 바로 따라 나오셨다. 건물 밖 골목어귀에 나오자 아버지는 한 움큼의 지폐다발을 남이 볼세라 서둘러 나에게 건네주었다. 아무 말씀 없이 돌아서더니 다시 숙직실로 들어가신다. 구부정한 뒷모습,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순간만은 아버지도 마작도 미워할 수가 없었다. 셋의 대학 등록금이 됐다. 무슨 수를 쓰셨을까, 마작을 모르는 나로선 알 길이 없다. 왜 다시 들어가셨을까?
그날 저녁 아버지는 약주를 한잔 걸친 불콰한 얼굴로 늦게야 들어오셨다. 나와 어머니를 보더니 손바닥으로 주머니를 털털 두드려 보이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주머니가 비었다는 아버지만의 너스레였다. 얼마간 남겼던 돈을 모두 잃어주고 왔노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지나가는 투로 말씀하셨다. 사회생활이란 어쩌면 남과 자신을 모두 배려하면서 정도껏만 욕심내야하는 힘든 기술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대학 입학을 그렇게도 고마워하시던 아버지, 회사 내에서도 어깨를 한껏 펼 수 있었다며 아들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시던 당신. 돌아가시던 그날까지 북으로 가신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끝내 접지 못하신 아버지. 찔레꽃이 피는 5월이면 들어내 놓고 내색을 못하시는 채 속으로만 가슴앓이를 하던 아버지. 지금은 나의 가슴에 진한 찔레향으로 남아있는 아버지를 이국의 벽지에서 새삼스럽게 만나는 아릿한 한 순간이었다.


                                            2005. 6. 2. 湛 如 쓰다




             찔 레 꽃

                             오 세 윤

        조곤조곤
        아침 비 내리는
        낮은 산길
        모롱이 돌다

        찔레꽃 흐드러지게 핀
        무더기
        만나는 보셨는지요.

        꽃 빛 만도 당신
        그리움인데
        코끝 아릿한 향은
        어쩌란 건지

        두고 오기 아쉬워
        조금 걷다

        돌아서
        다시 갑니다














Music: 찔레꽃 (문주란), Webpage by S. Steven Kim - June 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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