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78597
1950년 6월 25일 소련제 탱크 등을 몰고 38분계선을 넘은 북한 인민군. 전날 국군은 자정을 기해 비상경계령을 해제했다. 많은 병력이 병영 밖으로 나간 상태에서 북한군은 손쉽게 서울을 점령했다. 중앙포토
#전날 밤부터 내린 비가 이어졌다. 6월 25일 새벽 4시. 소련제 T-34 탱크 242대, 전투기 170대를 몰고 인민군 7개 사단, 1개 전차여단이 38분계선을 넘었다. 1129일 비극의 시작이다. 국군은 전날 비상경계령을 풀고 사병들에게 농촌의 모내기를 도우라며 2주간의 특별휴가를 보냈다
2022.06.13 19:08
2022.06.14 08:40
한국 사람들은 맥아더를 이순신 섬기듯 한다. 인천상륙작전으로
한국을 공산 침략으로 부터 구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민의 진짜 은인은 미8군사령관 Walton Walker 장군이다.
한국군은 인민군 침공 한지 사흘만에 박살이 났다. 지휘체계가 무너진
오합지졸이 되었다. 전쟁은 인민군 대 미군이 되었다. 전쟁 지휘권을
맡은 극동사령관 맥아더는 일본에 있는 평화 유지군을 한국에 파견
하여 인민군을 막으려 했다. 오산과 대전에서 미군은 괴멸되었다.
맥아더는 워커 중장이 지휘하고 있던 8군을 한국에 파견했다. 8군은 일본
평화 유지 군이었다. 워커는 낙동강을 최후의 보루로 삼고 인민군과 대치 했다.
미군병사들은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8세 청년 들이었다. 이차대전
이후 미국은 평화군 정책으로 군 훈련도 제대로 시키지 않고 기본 무기 지급도
하지 않았다. 병영에서 야구등 스포츠와 리크리에숀만하고 지냈던 병사들이었다.
워커는 이런 병사들을 독려하여 악전고투를 했다. 한국군 또한 전투력이 형편 없었다.
부족한 전투 병력을 매우기 위해서 한국인 병사들을 미군에 배속 시켰으나 말이 통하지
않고 훈련 부족으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캇츄사의 시작이었다.
낙동강 방어선이 뚤릴 위험이 있을 때 마다 워커는 맥아더에게 해병대 파병을 요청
했고 맥아더는 보물처럼 아끼던 해병대를 보내 주었다. 미해병대는 그때 마다 눈부신
전투력으로 위기를 돌파 했다. 맥아더는 전쟁 초기 부터 인천상륙을 계획하고 해병대를
대기 시키고 있었다.
소련은 인민군에게 해군과 공군 지원을 해 주지 않았다. 미군은 하늘과 바다를
제압 했다. 항공모함에서 하늘로 뜬 항공기는 남북한 전역을 폭격 했다. 도로,
철로, 교량, 보급창고가 파괴 되었다. 인민군은 보급이 고갈 되었다. 그들은
굼주린 배를 움켜 잡고 싸웠다. 부상자와 전사자를 매꿀 보충병이 오지 않았다.
현지 농민을 잡아다가 전장에 몰아 넣었다. 탈영병이 속출 했다. 감시병을
두었으나 별로 소용이 없었다.
그동안에 미군의 전투력은 급속히 성장 했다. 그리고 국군도 전열을 정비하여
전투에 도움이 되었다. 9월15일 경 인민군은 붕괴 직전이 되었고 미8군은
낙동강 저지선을 돌파 하기 시작 했다. 인천상륙의 적기 였다. 맥아더가
옥수수 파이프를 물고 인천 바닷물에 무릅을 적시는 사진을 찍을 때가 온 것
이었다. 마치 투우을 창으로 수없이 찔러 만신창이를 만들어 놓고 투우사가
투우를 제압하여 관중을 열광 시키는 것 처럼.
미국의 언론은 맥아더를 대서특필 했다. 과묵한 워커의 공은 별로 알려 지지 않았다.
맥아더의 자존심은 하늘을 찔렀다. 그는 북진하여 인공을 멸망시키고 대한민국으로
통일 시킬수 있다고 자신 했다. 낙동강 방어선이 뚤릴 무렵 인민군은 괴멸 되었다.
마치 전쟁 초기의 국군 꼴이 되었다. 지휘체계가 붕괴된 오합지졸이었다. 남북통일이
가능 하다고 볼 수 있었다. 이승만도 맥아더와 같은 생각이었다.
1950년10월1일 이승만과 정일권은 맥아더의 승인 없이 동해안 전선에서 38선을 넘어
북진 했다. 이날을 대한민국 정부는 국군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인민군이
서울로 처들어 올때 처럼 큰 저항 없이 원산 쪽으로 진격 했다.
서울 수복 후 맥아터는 워커의 야전 사령관 지위를 자신이 직접 차지 했다. 그동안 야전
사령관은 워커 였다. 그리고 동부 진격은 인천 상륙 주력이었던 10군단 알몬드 장군이
서쪽 진격은 8군단 워커 장군이 맏 도록 했다. 워커는 이에 크게 불만을 품었다. 사실상에
강등이었다. 더구나 주력 부대를 둘로 갈라서 평양으로 진격하는 것은 군 작전 상 상식
밖의 일이었다. 더구나 맥아터는 원산 상륙 작전을 고집 했다.
워커 지휘하에 미군 전 병력이 평평한 서부 전선에서 평양을 공략 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인공을 멸망 시킬 수 있는 일이었다. 미군은 자동차로
이동 하는 군대 였다. 산악지대에 들어 가면 맥을 못 추는 군대가 구태여
동부 산악 지대로 들어 갈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맥아터는 기상천외의 작전계획을 세운다. 원산에 동부 10 군단을 상륙
시켜 원산으로 부터 서쪽으로 진격하여 서부 육지로 올라오는 8군단과
합류하여 평양으로 들어 간다는 작전 이었다.
미군의 장비, 보급, 병력이 인천에서 출발하여 서해, 남해, 동해를 돌아
원산에 도착 해야 했다. 서부에서 좋은 도로를 따라 북진하는 병력과
타임잉을 마추기가 힘들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었다.
자기 과시를 참지 못하는 맥아터는 원산 상륙 작전을 암시하는 말을
언론에 흘려 소련이 이를 미리 알고 원산 앞바다에 수뢰를 잔뜩 깔아
놓았다.
수뢰를 제거 하기위해서 일본 해군 배를 동원 했다. 수뢰를 제거 하는
동안 미군 함정은 매일 울릉도를 왔다 갔다 했고 병사들은 배멀미에
시달 렸다.
그동안에 국군은 이미 원산에 들어 왔다. 중공군은 이미 청천강과
장진호 근처에 스며들고 있었다. 미군은 아군이 점령한 원산에 상륙 했다.
8군과 10군의 상봉은 물 건너 같고 국군과 8군이 평양에 들어 간 사이
에 10군은 장진호에서 중공군을 맞이 한다.
남북통일의 영광을 워커에게 주지 않으려고 맥아터는 야전 사령관을
직접 맡았다. 그리고 원산에서 다시 한번 옥수수 파이프를 물고 원산 바닷물
을 무릅에 적시는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그러나 세기의 웃음 꺼리가 된
원산 상륙 작전은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맥아터는 그저 한달 정도 면 인공을 멸망시킬 것으로 생각 했다. 중공군의 개입
했다는 정보가 속속 들어 오는 데도 이를 부정 했다. 추운 겨울 날씨, 산악이
많은 지역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았다. 전쟁 초기 부터 개입을 노리고 있던
중공군은 미군이 38선을 넘자마자 스며들었다.
야전사령관 맥아터는 중공군에게 대패 했다. 1950년 12월 23일 워커는 후퇴한
미군을 독려 하기 위해서 의정부 근처에서 지프차에 서서 타고 가는 도중 반대편에서
오는 국군 무기운반 차량과 충돌 하여 사망 했다. 다음해 1월4일 미군은 다시 서울을
내준다.
서울 수복의 밑거름이 된 장군은 워커 였지만 서울을 중공군에게 내준 장군은 맥아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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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만주는 일본 땅이었다. 소련군은 일본이 항복하기 전인 1945년 8월8일에
만주와 북한에 들어와서 일본군과 싸우고 있었다. 원자폭탄 2방을 맞고 전쟁물자
가 고갈 상태인 일본군은 이미 죽은 군대였다. 그대로 두면 한반도는 소련 손에
넘어 가는 것은 시간 문제 였다. 미국은 적어도 서울은 미국이 차지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소련 에게 38 선 이남으로 내려 오지 말라고 했다. 소련은 아무 이의 없이
동의 했다.
일본이 나가고 38 이북은 소련이 이남은 미국이 점령 했다. 미국은 신탁통치를
하자고 제안 했다. 소련은 반대도 찬성도 하지 않고 있다가 한국 사람들이 극열
하게 반대하자 반대로 돌아 섯다.
소련과 미국은 하나의 정부로 독립 시켜 주겠다고 한국 사람들에게 약속하고
회담을 계속 했으나 모두 실패 했다. 북에는 공산국가가 남에는 민주국가가
민들어 졌다.
한나라가 되는 유일한 방법은 전쟁 이었다. 소련은 김일성에게 무기를 주고
군인들을 훈련시켜 어느 독립국가 군대 못지 않은 군대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소련군은 북한에서 떠났다.
이승만도 강력한 군대를 원했다. 그러나 미국은 원하는 무기를 주지 않았다.
이승만이 북진 할 것을 우려 했기 때문이었다. 칼빈 총 하나 씩 가진 10만 대군이었다.
포병도 공군도 해군도 존재가 분명 치 않았다. 그런 군대를 놓아두고 미군은 남침
일년전에 남한에서 모두 떠났다.
나라는 부패해서 망하고 전쟁은 힘의 균형이 깨지면 발생 한다. 1950년 6월, 북한은
남한보다 훨씬 강했다. 해볼만한 전쟁이었다.
현재 남한은 북한보다 엄청나게 강한 나라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은 남한 뿐만아니라
세계 어느나라 라도 선제 공격을 할 수 없게 하고 있다. 만약 북한에 핵이 없으면 남한
의 위협을 견디기 힘들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 하지 않는 이유 이다. 핵은 약소국이
강대국의 위협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확실한 무기 이다. 남한이 핵 무장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