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07 06:28
https://news.joins.com/article/24099734?cloc=joongang-home-opinioncolumn
수(隋)나라가 대륙을 통일했을 때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고구려였다. 중국이 남북조로 분열한 170년(420~589) 동안 고구려는 남조와 북조의 대립을 이용하며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수나라의 통일은 고구려가 누리던 특수가 만료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중국에 강력한 통일 왕조가 들어서면 그 창끝은 요동과 한반도 북부로 향했다. 한무제 때 고조선 정벌이 그랬다. 이를 피하려면 신라처럼 중국의 세계 전략 안에 들어가야 했지만 고구려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중국의 주변 세력을 적극 활용했다.
[출처: 중앙일보] [역지사지(歷知思志)] 안시성
*고구려는 연개소문 아들들의 권력투쟁으로 나라가 분열되어 망 했다. 부패의 정의는
국익보다 사라사욕을 앞세우는 위정자의 행위이다. 모든 나라의 끝장은 위정자들의
부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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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4년에서 666년 사이, 보장왕 23년 ~ 25년 연개소문이 죽고 맏아들 연남생이 부친을 대신하여 막리지가 되었다. 연남생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대권을 장악한 뒤, 지방의 여러 성을 순시하였다. 이 틈을 타 동생 2남 연남산·3남 연남건이 정변을 일으켜 수도를 장악하였다. 이후 형 연남생의 아들 연헌충을 죽이고 왕명을 빌려 소환하자, 연남생은 국내성으로 달아났다. 그 곳 세력을 규합해 고구려 중앙정부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먼저 오골성(烏骨城)을 치는 한편 당나라에 대형(大兄) 불덕(弗德)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려 하였으나 요동을 통과하지 못하였다. 고구려 평양성(랴오양시) 중앙정부의 압력이 가해지자, 연남생은 남으로 내려가 고구려 수도 평양을 치는 대신 서북 요동방면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연남생은 또다시 대형 염유(冉有)를 다시 당나라에 보내 구원을 청하였으나 회답이 없자, 이번에는 아들 연헌성을 당나라에 보내어 거듭 구원을 청하였다.
666년 6월, 마침내 당 고종이 좌효위 대장군 계필하력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나가 연남생을 맞이하게 하였다. 연남생은 이에 고질, 고현, 책성도독 이타인, 고족유 등 국내성의 귀족들 및 부하들을 데리고 탈출하여 당 나라로 도주하였다.[103] 666년 6월 7일, 우효위대장군 계필하력을 요동도안무대사로 임명하여 병사를 이끌고 연남생을 지원한다. 연헌성을 우무위장군으로 임명하여 길안내를 맡게 한다. 한편 고구려에서는 666년 8월, 보장왕이 연남건을 대막리지로 삼아 내외의 군사에 대한 직무를 겸직하도록 하였다. 666년 12월, 고구려가 형제간 내부 권력투쟁이 발생하는 동안 연개소문의 동생이자, 연남생·연남건 형제의 숙부인 고구려의 대신 연정토가 고구려 남쪽의 12성, 763호, 3,543명을 데리고 신라에 투항 해 버렸다. 북쪽에서는 연남생이 당에게, 남쪽에서는 연정토가 신라에게 각각 투항하여 고구려 심각한 내부 분열로 위기를 맞게 된다. 연남산과 보장왕은 평양성(랴오양시)를 버리고 한성(평양직할시)으로 천도하여 버텼으나 끝내 항복해 결국 668년 고구려는 나·당 연합군에게 멸망하였다.[104]}} 669년 당나라는 고구려 지배층을 중심으로 약 3만호를 중국의 오르도스 지역 등으로 집단 이주시켰고, 그 흔적이 실크로드에 남아 있다.[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