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01 10:43
앞줄 좌단에서 세번 째, 1972년 음(력) 5월 20일이니 어머니 하직한지 5년 후이다. (붓으로 쓰셨느니 어머니 글씨다.) 여수 오동도 1974년 7월 1일 여수오동도라고 펜 글이지만, 어머니 필치다. 좌단에서 세번 째, 어머니 흰 머리가 바람결에 날리네. 우리어머니 흰 머리가..... 여기에 이르러 나는 또 한번 눈물을 닦았다. 그저 슬플 뿐이다. 나 떠난지 8년 후. 천지연 좌측. 쌍용사 우측 … 두 장 모두 일자도 없고, 설명도 없지만, 사진속에 장소가 명시되었다. 좌측 사진은 틀림없이 나 떠난 후에 제주에 가셔서 찍으신 사진이겠고, 우측 사진에 쌍용사라고 나왔는데 어머니께서 훨씬 젊으셨을때 사진인 듯하다. 이 두 사진 모두 어떤 연유로 찍으셨는지 알 수없다. 남원 광한루 Portrait view 1974년 7월 2일 남원광한루에서 어머니 펜글씨에도 꼭 한자가 있고, 어머니는 중앙에 계시다. 역시 출국한지 8년후이다. 남원 광한루 Landscape view 연화사 예수재 좌향 어머니를 찾있는데 위치 설명이 힘들다. 세번 째 줄 좌단에 의자에 반쯤 서서 계신 (여)신도분그로부터 네번째 째 앉으신 어머님이 다. 따로 쓰신 글자는 없고 색인 글이 "연화산 예수재 기념, (戊戌 四月 二十五日)이다. 무술 4월 25일이 확실한 연도를 다시 찾아니 1958년이다! 하긴, 어머니 머리가 백발이 아니었다. 그러니 어머니 만 59세이셨다. 나는 의예과 2학년이었으니, 우리가 회기동 후생주택에서 살 때였다. 아래 사진은 같은 사진이다. 연화사 예수재 입향 연화사 대웅전 그런데 윗 사진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 사진안에 너무 여러분이 계셔서 내가 어머니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낭패라도 이만 저만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집 사람이 저녁 먹으라고 불러도 어머니를 못 찾으니 저녁이 무슨 저녁인가? 저녁은 일단 보류해 놓고, Magnifying glass로 한 분, 한 분 세밀히 관찰하였더니 마침내 마지막 줄 좌단에서 세번 째 서 계신 어머니를 결국 찾았다. 어머니 글은 없고, 따라서 연도와 일자는 미상이지만, 그나마 큰 다행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 사진 찍으실 때도 역시 위의 예수재 사진과 같은 날이며 장소만 바꾸었던 듯하다. 어머니 사셨을 때 왜 지금처럼 어머니를 간절히 생각하고 또 찾지 못했던가? 글자풀이: 예수재 [預修齋]: 사후(死後)를 위해 살아 있을 때 재를 올려 공덕을 쌓는 불교의례. 삼사순례(三寺巡禮), 가사불사(袈裟佛事)와 함께 윤달[閏月]에 행하는 대표적인 불교민속의 하나이다.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 예수칠재(預修七齋)라고도 하며, 사후에 행할 일을 미리 한다는 의미에서 역수(逆修)라는 말을 쓰는 경우도 있다. |
2015.10.01 16:08
2015.10.01 23:24
애지증지 길렀던 아들을 멀리 미국에 잃으시고, 인생의 꿈 하나가 사라진 어머님이 아니신가요?
그것보다 큰 실망이 어디에 또있을가요? 마음속 한군데가 영원히 텅 빈것 같으셨겠지요.
이렇게 말함은 본인 자신의 어머님을 보는듯 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본인도 똑같은 짓을 했으니, 우리끼리 그렇게 얘기할수있겠지요.
참 못 다한 효도입니다. 우리가 이제 그리워하며 후회함이 그나마 위안이 되실런지...
Photo 1: Obviously, 앞줄 왼쪽부터 3번째
Photo 2: 왼쪽부터 3번째
Photo 3, She is there.
Photo 4: 더 젊으셨을때?
Photo 5: Center
Photo 6: Same as above
Photo 7: This is tough. Let her son find her.
Photo 8: Same, Maybe they were all younger.
Last Photo 9: She was younger th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