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12 12:18
"제 장례식에 초대합니다"
장의사에는 입관 예배를 드릴 수 있는'채플(작은 예배당)'이 있고, 그 옆에는 다과를 나누는 응접실이 붙어 있다. 입관된 시신에 마지막 경의를 표한 조객들은 응접실로 이동하는데, 그때부터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진다. '경건 모드'가 삽시간에 '사교 모드'로 바뀌는 것이다. 조문객들은 망자를 언제 봤느냐는 듯오랜만에 만난 지인을 반기며 더러 웃기도 한다. 접시에 가득 음식을 싸 놓고,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관 속에 누워 조문을 받는 순서가 끝나면 이처럼 망자는 여지없이 '찬밥 신세'가 되고 만다. 망자 입장을 살핀 한 어른이 자신의 독창적인 방식을 들고 나왔다. 죽어서 '찬밥 신세'가 되는 대신 살아서더운 밥을 같이 나누자고 나선 것이다. 올해 83세인 내과의사 출신인 이재락 박사는지난 4월 느닷없이 캐나다 토론토의 <한국일보>에 공개편지를 보내왔다. 편지의 제목은 '나의 장례식'. 그 편지에서 "제목이 좀 이상하다, 그러나 이 글의 말미쯤에는좀 이해가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서두를 깔았다. 이어서 연유의 설명이 뒤따랐다. 그때 그 시절엔 내 친구들이 모두 젊은 나이였기에 해당 사항이 없었기 때문일 게다. 그후 25년을 이곳 토론토에 거주하면서 친지, 지인들의 장례식에 참석한 일이 여러 번 있다. 장례는 그 민족, 그 나라 또는 그 지역에서 몇 천 년 동안 내려온 문화와 그 당시의 내세관,또는 인생관의 총집결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생각한 일인데 내가 거동도 하고, 말도 하고 아프지도 않을 때 지인들과 친지를 모시고회식을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한 인간의 삶의 끝마무리를 하고 싶다. 친지, 지인들과 웃으면서 즐겁게 담소도 하고 작별인사를 하는 그런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이를 장례식이라 해도 좋고, 마지막 작별인사 모임이라 불러도 좋다." 토론토에 25년 동안 살면서 참석한 장례식에서 이 박사가 느낀 것은 '망자만 억울하게 찬밥 신세'가 되는 장례식 풍경이었다. 그는 그것을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그 전통을 깨는 길 밖에 없다고 스스로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내 장례를 준비할 상황에 처해 있다. 나는 금년에 83세인데 며칠 전 담낭암(쓸개암)이란 진단을 받았다. 그후 MRI란 검사를 하니 이젠 담낭암이 간, 위에도 퍼졌고 복부 여러 곳의 복막에도 퍼져 이젠 소위 말기암 상태라 한다. 아직 아픈 데도 없고 잠도 잘 자고 있으니 말기암이란 MRI 촬영 결과가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의 내 상태가 태풍전야의 일시적 고요라고 하며 두 달, 또는 석 달 계속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이 점도 미리 분명히 밝혀 두었다. "몇 가지 부탁이 있다. 하나는 장례식에서 흔히 보는 소위 조의금은 없었으면 한다. 다만 한 가지 예측 못할 일은 나의 암 진전 상태다. 만일 들것에 실리는상태가 되면 이 모임은 부득이 취소할 수밖에 없다." 지난 9일(토) 정오 연회장 '타지'(Taj)에 300여 조객들이 몰려들었다. 조객들은 검은 양복이나 검은 드레스 대신 평상시의 외출복을 입었고, 꽃무늬가 화려한 옷을 입은 여자들도 눈에 띄었다. 처음 이 박사가 이런 장례식을 제의했을 때 세 아들은 '뜨악'해 했다. 이 박사는 "첫째와 셋째 며느리는 비 한인인 데다 아들들 모두 한국말이 서툴러서 장례식 방문객을 제대로 맞이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했다. "검은 양복·드레스 대신 꽃무늬 있는 예쁜 옷 입고 오세요" 군복무 중 미군 장교의 도움으로 미국 덴버에 있는 육군병원에서 7개월간 실습했다. 인삿말에서 이 박사는 "죽어서 장례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들의 손을 잡고 웃을 수 있을 때 인생의 작별인사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박사는 "원래 7월에 할 생각이었는데, 암 전문의인 아들들의 조언에 따라 일정을 앞당겼다"며 "최근 검사를 받아보니, 암이 거의 커지지 않았다고 해 너무 서두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플로리다에서 만났을 때,프랭크 시나트라는 그에게"I'm quitting the business. (난 이 비즈니스를 걷어치울 거야. I'm sick of it,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I'm getting the hell out (이 지옥에서 벗어나려고 해)"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비즈니스'는 음악이었다. 하지만 실은 죽음을 앞두고 되돌아보는 인생으로 은유된다. "이제 종말이 다가온다./ 나는 마지막 커튼을 마주한다./ 친구야, 분명히 말할게/내가 확신했던 내 삶을 얘기할게. 난 완전한 삶을 살았어./ 가야 할 모든 길을 가 봤어/ 그리고 그 이상이었던 것은/내 방식 대로(my way) 살아 왔다는 거야./ - - -( 하략 )" 큰 아들이 부르는 노랫말을 듣고 이 박사는 무슨 감회를 느끼고 있었을까? |
2012.08.12 12:32
2012.08.12 12:43
2012.08.12 15:02
Internet을 찾어보니 윗 webpage는 한국의 Internet News인 "OhMyNews.com" (좌파 media)에
처음으로 실린것 같습니다.
이상묵이라는 독자가 기고한 모양입니다.
토론토, 83세 말기암 이재락 박사 이색 장례식 현장
12.06.24 20:10, 최종 업데이트 12.06.24 20:10
이상묵(sangmooklee7)
기고는 6/24/2012이니 아마 실제 영결식 (장례식)은 6/09/2012 로 추측됩니다.
2012.08.12 22:57
2012.08.12 22:58
2012.08.13 00:32
Some religious group in this country celebrates
death by dancing, singing, and chanting -
Glory Hallelujah !
Each one of us has his own "My Way".
---And now the end is near,,,
For what is a man what has he got
If not himself then he has not
To say the things he truly feels
And not the words of one who kneels
The record shows I took the blows
And it was my way
Yes it was my way...
2012.08.13 01:55
2012.08.13 11:23
이재락 선배님께서 생존하신지 서거하셨는지 본인은 전혀 모릅니다.
다만 그분의 영결식 Party (that he called as his funeral)의 webpage를 옮겨왔을뿐입니다.
장례식이 6월이였고 지금은 겨우 8월입니다.
이 글을 읽은후에 다음과 같은 본인의 생각을 여기 보탭니다.
1. 우리동기중에서, 전혀 남에게 알리고있지 않고 있다가, 위암으로 서거한 동문이 있는데,
본인이라면 그렇게 떠나고 싶지는 않거든요.
이런 경우에 차라리 건강할때, 동문들을 불러서 Party를 한번 열고,
"내가 죽어가는 꼴을 너희가 더 볼 필요가없고, 죽으면 구태여 힘들게 올 필요 없다." 라고 했다면 어땠을가?
2. 본인도 만일 의사로 부터 사형선고를 받는다면, 이재락 동문님처럼, 이런
"Celebration of my life for the last time, and I like to do that with you guys. Please join me" Party를 열 생각이 있다.
3. 단지 "장례식"이라고 부르기는 싫고, "영결식"이라고 하기도 좀 거북하니, "Last Party With Me"라고 하면 어떨가?
만일 한참 기다려도 죽지 않으면, simply, "Cancel (disqualify) the darn 'Last Party' and Let's do it one more time."
4. If we can do something similar to what I said above, a death can be a fun event
and also we can get rid of a lot of inconveniences of traveling to a funeral.
5.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죽기전이건 죽은후이건), "장례식, 영결식"이라는 명칭은 없애자.
그대신 "회고식', 또는 "Celebration of 'His" Life" 라고 했으면 좋겠다.
요새 많은 미국인들이 죽은후에 "Celebration of Life" party를 열지요.
죽음이라는것은 하나의 자연적 전진단계로서 당연히 맞이하는 과정이기에,
그 사람의 죽엄을 슬퍼하는것보다는 그 사람의 지나간 生을 축하해줌이 더 옳지 않을가?
6. One of the best reason I like to have my funeral while I am alive is:
I like to hear what "that particular SOB" is going to say about me (for the last time) !!
After whatever he says about me, I will shake hands with him and say "Thank you, anyway."
약간의 농담처럼 이글의 끝을 냈지만, 사실 I am very serious about what I said here.
If I will be in a situation like this, there's a good chance that I will do it "My Way".
For all of you, please give a serious thought about this.
이재락 선배님으로부터의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Thank you Dr. 이재락 선배님 !
What a wonderful life of a pioneer and what a nice finish !
2012.08.13 12:33
2012.08.13 13:55
2012.08.13 15:46
2012.08.13 17:48
That is an excellent idea.
It is well known to prepare the tomb site in advance,
but I never heard a live pre-funeral party.
My uncle gave his body to Chungnam Univ Med School.
I remember having send my pre-funeral expense while he was alive.
They gather, all the relatives and children, before one expires, 임종.
But rarely, they invite everyone who is expected to attend a funeral.
I should prepare a tomb stone to my liking and decide where I should be burried.
I think it was 도연명, who prepared Eulogy before for his own death.
自祭文(자제문) 스스로 지은 제문 陶淵明(도연명)
序歲惟丁卯 律中無射 天寒夜長 風氣蕭索 鴻鴈于征 草木黃落
세유정묘에 율중무역이려니 천한야장하고 풍기소색이라. 홍안우정하고 초목황락이라.
陶子將辭逆旅之館 永歸於本宅 故人悽其相悲 同祖行於今夕 羞以嘉蔬
도자장사역려지관하여 영귀어본댁이라! 고인처기상비하며 동조행어금석이라 수이가소하고,
薦以淸酌 候顔已冥후 聆音愈漠 嗚呼哀哉
천이청작이라 안이명하고 영음유막하니 오호애재로다!
정묘년(427)년 율려(律呂)의 무역(無射)에 해당하는 음력 구월 달.
날씨는 차고 밤은 긴데, 쓸쓸하고 스산한 바람 불어온다!
기러기는 어딘가로 날아가고, 나뭇잎은 누렇게 말라 떨어진다.
나! 도연명은 이제 여관처럼 머물던세상하직하고,영원한 나의 본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친구들은 애절하게 슬퍼하며 오늘밤 떠나는 날 위해 노제를 지내는 구나
제상에는 많은 음식을 차려 놓고 맑은 술을 따라 올린다.
얼굴을 들여다봐도 나는 이미 죽은 몸 소리를 들어보려 해도 가슴만 답답할 뿐이다
오호라! 슬프도다!
茫茫大塊 悠悠高旻 是生萬物 余得爲人 自余爲人 逢運之貧 簞瓢屢罄 絺綌冬陳
망망대괴 유유고민 시생만물 여득위인 자여위인 봉운지빈 단표루경 치격동진
含歡谷汲 行歌負薪 翳翳柴門 事我宵晨 春秋代謝 有務中園 載耘載耔
함환곡급 행가부신 예예시문 사아소신 춘추대사 유무중원 재운재자
끝없이 넓고 넓은 땅덩어리와 아득히 높고 높은 하늘이 있어,
이것들이 천하 만물을 낳았거늘 나는 사람으로 태어난 이래로
나라는 사람으로 살아오는 동안에 가난한 운명으로 맞아 쳤구나!
대나무 밥그릇과 표주박은 자주 비웠었 불렀다.
늘 사립문을 닫아 놓고 살았으며 새벽부터 밤까지 날 위해 일했네.
봄가을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부지런히 들에 나가 노력했었고
철 따라 김매고 북 돋우며 이윽고 키우고 이윽고 늘려나갔다.
欣以素牘 和以七絃 冬曝其日 夏濯其泉 勤靡餘勞 心有常閒 樂天委分 以至百年
흔이소독 화이칠현 동폭기일 하탁기천 근미여로 심유상한 락천위분 이지백년
惟此百年 夫人愛之 懼彼無成 愒日惜時 存爲世珍 沒亦見思 嗟我獨邁 曾是異玆
유차백년 부인애지 구피무성 게일석시 존위세진 몰역견사 차아독매 증시이자
때로는 기쁜 마음으로 글을 읽었고 칠현금 타며 즐거워도 하였다.
겨울에는 따스한 햇볕도 쬐어보고 여름에는 샘물로 몸을 씻기도 하였다.
부지런히 수고롭게 열심히 일하면서도 마음은 언제나 한가롭기 짝이 없었다.
즐거운 마음으룬 것 없음을 두려워도 하며 하루 한 시각도 아쉬워하는구나.
사람들 살아서는 세상에서 대접 받길 바라고 죽어서는 오래 기억되길 바라지만
하지만 나는 홀로 어리석어 오래 전부터 그들과는 다르게 살았다.
寵非已榮 0000 捽兀窮 酣飲賦詩 識運知命 疇能罔眷 余今斯化 可以無恨
총비이영 0000 졸올궁려 감음부시 식운지명 주능망권 여금사화 가이무한
壽涉百齡 身慕肥遯 從老得終 奚所復戀 寒暑逾邁 亡既異存 外姻晨來 良友宵奔
수섭백령 신모비둔 종로득종 해소복련 한서유매 망기이존 외인신래 양우소분
葬之中野 以安其魂 窅窅我行 蕭蕭墓門
장지중야 이안기혼 요요아행 소소묘문
총애받기를 영광으로 여기지 않았고 속세의 진흙탕에도 물들지 않았다.
허름한 초가에 살면서도 나를 우뚝 하게하였고 술을 즐기며 시도 지었다.
내 운명을 스스로 알고 천명을 깨쳤으니 능히 분수를 알았고 얽매일 것도 없구나.
이제 내 운명을 따라 나는 지금 죽어가지만 더 이상의 여한이란 있을 수 없다.
백 살 가까이 살만큼 살았고, 몸은 두텁게 은둔하기를 좋아하여 살만큼 살았고
늙어서는 죽게 되니 무엇을 다시 바랄 것이 있겠는가?
추위와 더위 연이어 지나고 죽음은 이미 삶과 다르게 되었다.
먼 친척들은 새벽부터 오고 친한 친구들은 밤에도 달려와서
들판 가운데 나를 묻어 내 영혼을 편안하게 해주는구나.
깊고도 먼 나의 저승길 무덤 속은 너무나도 적막하고 쓸쓸하다.
奢侈宋臣 儉笑王孫 廓兮已滅 慨焉已遐 不封不樹 日月遂過 匪貴前譽 孰重後歌
사치송신 검소왕손 곽혜이멸 개언이하 부봉부수 일월수과 비귀전예 숙중후가
人生實難 死如之何 嗚呼哀哉
인생실난 사여지하 오호애재
송신 환퇴 같이 호화롭게도 하지 말고 검소함은 한나라 왕양손을 비웃을 정도로 하시오.
관이야 썩어서는 사라질 것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개탄하리라
내 무덤엔 봉분도 만들지 말고 나무도 심지 말고 햇볕과 달빛만 지나가게 하리오.
살아서도 명리를 귀히 여기지 않았거늘 죽은 후에야 그 누가 칭송하며 중하게 여기랴?
살아생전에도 어렵게 살았는데 사후 세계 또한 그러하면 어찌하나?
오호라 ! 서글프고 애통하도다!
도연명(365~427): 자는 연명, 또는 원량(元亮). 이름은 잠(潛).
집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 심어두고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다.
강서성(江西省) 구강현(九江縣) 시상(柴桑)출생.
그의 증조부가 서진(西晉)의 명장 도간(陶侃)이며, 외조부가 당시 동진(東晋)의
명사 맹가(孟嘉)였다고 하는데, 그의 부친은 이름 없는 선비에 불과하여 아직까지도
그 이름을 알 길 없을 정도로 그의 어린시절은 그리 풍족치 못한 한미한 가정에서 자랐다.
29세 때 처음 관직으로 미관말직인 주(州)의 좨주(祭酒)가 되었지만 곧 사임하고
그 후 군벌항쟁의 세파에 시달리며 한직에 머물다 41세시 누이의 죽음을 빌미로
팽택현(彭澤縣) 현령을 끝으로 평소에 늘 그리던 전원생활로 돌아갔다.
바로 팽택현 현령 사임사(辭任辭)가 바로 그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그 후 향리에서 전원생활로 일생을 스스로 괭이 들고 농사지으며 가난과 병으로
괴로운 나날 중에도 시작(詩作)을 게을리 하지 않고 생활 속에서 우러나는 진솔한 시로
역대 중국을 대표하는 자연주의 전원시의 일 대가로 자리매김하면서
그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주요작품으로 (귀원전거)(오류선생전)(도화원기)등이 있다.
주.
1)율중무역: 음악의 12율 중 하나. 그것을 일년에 비하면 9월에 해당한다.
2)조: 먼 길을 떠 날 때 지내는 노제(路祭).
3)후: 들여다보는 것. 바라보는 것.
4)령: 소리를 듣는 것. 귀를 기울이는 것.
5)단표: 대나무로 만든 밥그릇 과 물 떠먹는 표주박.
“일단사일표음”(一簞食一瓢飮: 논어 옹야편 제9장 의 것을 인용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질도다. 안회여!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마실 것으로
누추한 곳에 있는 것을 남들은 그 근심을 견뎌내지 못하지만 안회는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하니 어질도다. 안회여!”)
(子曰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 回也)
6)치격: 고운 갈포 치와 거친 갈포 격. 다시 말해 베옷을 말한다.
7)예예: 날씨가 어둑어둑한 모양.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한적하여 날씨가
어두운 모양으로 은유하였다.
8)소신: 밤과 아침. 아침과 저녁.
9)요요: 아득히 먼 모양
10)송신:공자께서 천하를 주유할 때 송나라를 지날 때 환퇴라는 송나라 대부가
공자를 죽이려 한 일이 있다. 그 송의 대부 환퇴가 죽은 뒤 시체를 넣을 곽을
만들게 하였는데 너무 공을 들여 3년이 지나도 완성되지 않았다는
고사가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전해지는데, 그런 사치스런 곽을 만든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말 함이다.
11)왕손: 한(漢)나라 때의 양왕손(楊王孫)의 고사로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아들에게 자기가 죽은 뒤 검소한 장사를 지내도록
여러 가지 까다로운 유언을 하였다 한다.
이 시는 대 시인인 도연명이 자신이 죽음을 예감한 듯 그가 죽은 해인 원가4년(元嘉4년:427년)
9월에 지은 시로 그의 절필(絶筆)로 알려져 있는 유명한 시이다.
대 시인 도연명은 이 시 자제문 이전에도 그의 죽음을 노래한 만가시(挽歌詩) 3수도 남겼는데,
모두 삶에 대한 그의 초연함을 잘 나타내고 있는 명문으로 꼽고 있다.
이 시 마지막에서도 “嗚呼哀哉(오호애재) 오호라 ! 서글프고 애통하도다!”라고 탄식하듯
읊고 있지만 시 전체의 분위기로 보아 그는 이미 삶과 죽음에는 달관한 도통한 도인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고 공자께서도 말씀한 “아침에 도 서면 저녁에 죽어도 가 하리라.
”(朝聞道 夕死 可矣)라는 경지에 들어섰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겠다. 감사합니다.
2012.08.13 20:28
2012.08.13 21:54
2012.08.14 02:05
2012.08.14 13:02
Dr. Minn;
도연명의 글에 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서 아뢰옵니다.
(아니면 후세인들이 해석에 큰 실수를 저질러 도연명을 모독하고있던가...)
I have read the whole thing, and then I realized the error.
글에 써있듯이 만일 그가:
"모두 삶에 대한 그의 초연함을 잘 나타내고 있는 명문으로 ...
그는 이미 삶과 죽음에는 달관한 도통한 도인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고..."
그렇다면, Why the hell, he is keep saying "嗚呼哀哉 오호라 ! 서글프고 애통하도다!” on his death?
It doesn't make any sense to me.
삶에대해 초연했고, 삶과 죽음에 달관도통한 者가 왜 자신의 죽엄에 땅을치며 통곡을 하는가?
Is this somewhat stupid or contradicting?
2012.08.14 18:51
운영자 앞:
陶淵明 이 1600 여년전 (365년 ~ 427년) 사람이니 그당시에도 사람이 죽으면,
당시의 습관을 따라, 장례식때, 고인을 생각해서 조사, 제문, 등을 상가집에가서
슬픈감정, 위로의 감정을 표현한듯한데, 지금과 비슷한것 같어요.
이글은그 시대 습관을 짐작하게 하는 글같어요.
사람이 죽으면 그때나 지금이라, 상가집에가서,
사람을 웃기는 농담이나, 그 사람 죽엇으니 나는 기분이 좋다, 고생더 않해도되니,
그 친구 잘죽엇다....
이런 표현을 않하는게 습관인것 같은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셧는지?
귀하게 여기는 재산이나 사람을 잃은 사람은 항상 마음의 상처, 쓰라림을 격게 되고
그런 사람을 돕는 방법은 슬픈 감정을 吐해내게하는게, 치료에 도움이된다는걸
옛날 부터 알아차리고 catarsis 하게끔 의식을 꾸며 온게 많은 문명의 공통점같고
예를 들어, 우리 습관에도 상가에서 哭하는 사람을 돈을 주고 사다가 "상객이 오면
"아이고.. 아이고.. " 처량하게 울고, 그러면 상가 집사람이 모두 우는걸 어릴적에 봣지요.
장례식할때 부르는 나팔 소리도, 구성진 곡이고, 제문이나, 조문, 모두 슬프고,
울음이 나올 정도로 처량하게 쓰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표현이될것이고,
이 글도 죽은 사람의 일생을 회고하고, 우리 곁을 떠너가 다시 영영 돌아오지 않는 길로
들어선 걸 슬퍼하는 글인데
이런 글을 친구나 가족이 발표하는게 습관인데
도연명은 자기 가 살아있을때 자기가 죽은 상황을 가정해서
자신의 일생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으니 자기가 직접 제문을 쓴글이고,
당시의 습관을 따라, 당시에 도연명의 죽엄들 애도하는 사람을 위해서
장례식때 읽을 제문의 melancholic tone 을 저변에 기술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날씨는 차고 밤은 긴데, 쓸쓸하고 스산한 바람 불어온다!
기러기는 어딘가로 날아가고, 나뭇잎은 누렇게 말라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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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연히 본인에게 오는 E-Mail을 보다가, 이 E-Mail을 보았지요.
"In Vivo Funeral"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어서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자세히 보니 주인공이 서울의대 출신이길래
부랴부랴 동창회 명단을 뒤졌더니 Class of 1954에서 이재락 선배님을 찾었지요.
주소는 North York, Ontario, Canada 로 되어있고,
Internal Medicine, Retired로 나옵니다.
2006년도 재북미 서울의대 동창회 명단에 의하면 1954 Class member가 9명있읍니다.
본인은 이재락 선배님을 전혀 모르지만, 우리 동문의 한분이기에, 이 글을 올립니다.
단지 장례식의 정확한 날짜 (년도와 달)를 알수없읍니다 (except "지난 9일, 토요일...")
Lately, for the date of 9th to be Saturday happens
only at January, October of 2010; April, July of 2011; and June of 2012.
따라서 이재학 선배님의 현황은 알수 없군요.
혹시 아시는 분은 연락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