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English
                 

History 外國語文과 씨름 65 年

2014.09.11 18:51

민경탁*65 Views:1684


        閔哥의 外國語文 受難史 65 년

        A 65 years of stuggle with foreign languages
        이 얘기는 우리 애들 친구들을 위해 영불어로 번역할 참이다.


        고교동문 정철 형의 "나의 外國語 修業記"  읽다보니 1950 년,
        그러니 내가 9살되든 해에 시작된 나의 外國語文과 씨름이 생각난다.


        그러니 73 전 내가 출생한 시골 초가집에서 이 얘기를 시작해야겟다.

        우리 세대가 한반도 남쪽에서 격은 역사가 압축되어있는 이야기같기도 하다.

        요새 젊은 세대에겐 이런 얘기는 현실과 무관한 옛 이얘기 같이 들릴것이지만, 나에겐 매일 일어나는 지금의 현실과 직결된 얘기다.

        나는 출생이 충남 대덕군 기성면 道安里 라는 농촌 초가집에서 1941 년에 태어낳고, 그 집은 우리 선조 5 대가 살아온집이라고 들엇다.
        동네는 밀양 朴씨 동네 집촌들이엿는데 옛날에 그 동네 한집에 외딸이 하나 잇었는데, 그 딸이 나에겐 고조할머님이된는 분이 되는가 보다.

        때는 아마 1800 년 초기 일것 갔다.

        딸이 성장해서 시집을 보내야겟는데, 물려 받을 땅을 팔아 다른 동네로 시집을 보내기 보다는 그분의 부모자신들의 老年을 위해 멀리 시집보내기 보다는 똑똑한 사위를 데려와서 땅을 상속하게 한모양이다.

        그래서 우리 고조할아버지가 부여에서 소위"데릿사위로" 장가를 들어왓는데,
        땅이 그렇케 크진 못해서 한 가족이 그저 먹고 살만한 땅이엿든 모양이다.

        그러나 집안에 손이 귀해 4 대 독자로 代를 이어오다가 우리 아버지 대에 아들이 둘이 태어나 두 아들을 모두 일본사람이 경영하는 근처 진잠이란 동네에 일본사람 소학교에 보내고 중학교에 모두 보내다 보니 집안 경제도 어려웟고, 그래서 할아버지가 그때에 유행하든 漢學을 공부 많이 못하고 농사만 짓다보니, 보통 서당에서 공부하든 간단한 한문에다 한글을 (언문)을 섞어 의사소통을 하셧지만, 漢學을 더 공부못한것이 무척 가슴에 맿힌 恨이엿든 모양이엿다.

        그래서 아들 두분 공부를 위해 여름 한철 힘들게 농사짓고 농한기 늦가을 겨울에 일본에 노무자로 나가서 돈을 모아 우리 아버지 큰아버지 두형제를 중학교 5 년 까지 교육신킨 분이셧다.

        얘기를 들으니 우리 아버지는 나이 13 살까지 동네 서당에서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漢學을 공부하다 세상이 바뀌는 것을 눈치 채고 일주
        일을 울면서 일본인 소학교에 보내달라고 해서, 13 세에 일본인 소학교에 들어가 18 세에 소학교를 졸업하시고 대전 중학교에 들어가 5 년 수업하시고, 23 세에 중학을 졸업하신다.

        나는 아버님이 중학교에 다닐때 태어낫다고 한다.

        아버지가 대전 중학 5년을 마치고 일년간 특별교육을 받고 그당시 일본 철도국 기사로 취직을 해서 일본군징용을 면제 받고 용산 철도국 공장에서 일을 하게된다.

        해방이되어 나는 유치원에 들어가고 방학이면 아버지 직장덕분에 무료 철도 패스로 일년에 두번씩 방학을 대덕군 농촌에서 보내게되고 또 농촌 생활에 익숙해졋고 재미있게 방학도 보냇다.
        나는 할아버지를 강아지 처럼 따라 다니면서 情도들게되고, 귀염도 받게된다.

        6.25 가 나기직전 32 세의 나이로 아버님은 서울 공대 기계과에 들어가신다.
        나는 용산국민학교에 들어가 3 학년때 전쟁으로 피난을 가서 방학때만 네려가든 고향에 떨어져서 전쟁중에 할아버님 밑에서 3 년을 살게된다.

        철도국 공무원으로 전쟁중이라 전근이 잦아 저를 부모님이 할아버지한테 맛겨두고
        이사를 다니셧다.


        1. 漢文受難

        하루는 할아버지가, 피난온 9 세난 손자 애가 학교도 않가고 매일 동네 애들하고 몰려다니는 것이 못맛당하셧든지, 유성 장터에 가셔서 天字文이란 책을 한권 사오셔서 저한테 하루 네줄 16 글자를 신문지에 먹을 갈아 붓으로 글짜를 스고, 완전히 외우라는 엄명을 네리신다.

        天地玄黃 宇宙洪荒 日月盈昃 辰宿列張 寒來暑往 秋收冬藏 閏餘成歲 律呂調陽
        천지현황 우주홍황 일월영측 진숙열장 한래서왕 추수동장 윤여성세 율려조양


        "하느천 따지 감을현 누르황" 이라고   노래 처럼 부르고 뜻은 머리속에 익히는 공부다.

        뜻은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 우주는 붉고 끝이 없다.  이런 얘기다.



        지금도 처음 16자는 기억을 하고있다.
        그 책은 한글로 토가 달려있고 글자도 커서 예습과 복습이 가능하고 書藝공부가 가능한 책이엿다.
        중국에서 5 세기 경에 만들어진 책이라고 돼있다. 책해설을 인터넷에서 보니, 역사가 긴책이고 우리 조상들이 천여년간 공부해온 교과서이
        고 아마 우리가 이 책을 공부한 한국의 마지막 세대인가한다.


        아래 글씨는 중국 송나라 휘종의 특수한 서체 수금체 라는 행서의 서체다.



        "천자문(千字文)은 중국 남조 양(502~549)의 주흥사가 양 무제의 명을 받아 지은 책으로, 모두 다른 한자 1000자로 1구 4자의 사언 고시 250구로 되어 있다. 동진 왕희지의 필적에서 해당되는 글자를 모았다고 하는데, 더 오래전에 중국 위나라 종요의 필적을 모은 것이 라는 설도 있고 천자문을 종요가 손수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해서 '언재호야(焉哉乎也)'의 어조사로 끝나 는데, 자연 현상부터 인륜 도덕에 이르는 넓은 범위의 글귀를 수록하여 한문의 입문서로 널리 쓰였다..."

        동내 애들이 문밖에서 내가 할아버지 앞에서 천자문 소리내서 복창하는걸 보고, 낄길대고 놀리기도 햇지만, 나는 그 공부를 실어하지도 않앗고 새로운 무엇을 배운다는 자신감으로 열심히 공부해 석달만에 한자 1000 개를 외운다.

        지금 말로 250 개의 sentence 를 익힌것이다.

        천자문을 끝내든날 옛날 습관을 따라 인절미란 떡을 해서 동네 사람을 불러 잔치를 하고, 할아버지께서는 틀림없이 손자 자랑을 크게 하셧을 것이다.

        유엔군이 대전을 수복해 가수원이란 면사무소근처에 국민학교가 다시 개학이 되엇는데 4 학년에 편입하고 학생은 9 명정도엿다.

        교사가 피란민 수용소로 변해서 근처 산에 소나무 밑에서 수업을 시작한 기억이 있다. 그 후에는 학생수가 적어 우리 반은 창고 한구석에
        서 공부를 시작한다.

        나는 학교에 10 리 길을 걸어서 매일 또 토요일 날도 오전에 학교에 갓다오는데,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대로 二重言語 교육을 염두에 드셧는지 동네 書堂 洪선생 할아버지한테 저를 데리고 면접을 하러갔다.

        洪선생 할아버지는 漢學을 많이 하신 동네어른으로, 20 여년전 대전 시장하시
        든 홍선기 형의 할아버지되시는 분이다. 그 당시만해도 동네에 자치통감이라는 한문 중국역사를 서당에서 공부하는 청년이 있을때엿다.
        내가 千字文 다음 書堂에서 공부할 책은 童夢先習 啓夢篇이란 책이라고 하셧다.


        서당이나 향교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칠 때, 먼저 《천자문(千字文)》이나 유합(類合)》으로 한자를 익히게 한 다음, 교훈적인 교재로서
        이 《계몽편》이나 《동몽선습>>을 썻다고 들러엇다.

        그당시 표준화한 교과과정이엇든 모양이다.

        다음으로 論語 大學 四書三經 등 소위 孔子曰 孟子曰 하는 책으로 진전하는 모양이엇다..

        啓 蒙 篇. 首 篇. 上有天하고 下有地하니.
        天地之間에 有人焉하고 有萬物焉하니.
        日月星辰者는 天之所係也요.
        江海山嶽者는 地之所載也요.
        父子 君臣 夫婦 長幼 朋友者는 ...이런 얘기다.


        그러나 학교갔다 오면 겨울엔 날이 빨리어두어지고, 야간 書堂이 없으니, 더 한문공부는 불가능하니, 그걸로 漢文 수업이 끝나는줄로 알았다.

        2 년반을 시골 국민학교 다니다 6 학년 초에 우리 부모님이 나를 데리고 대전 피란 국민학교에 전학을 시키고 도 석달뒤에 부산 초량이란 곳에 성지서울 피란국민학교 라는 곳에 다시 전학을 한다. 이곳에서 어저께 미국 우리집 찾어온 홍순모 또 신홍순이를 만나게된다.
        그곳에서 3 달 공부하고, 졸업을 하고 부산 송도에 있는 피란온 용산중학교에 들어갔는데, 그곳에 또 한문 시간이 일주일에 한시간씩 있어 한문 공부를 다시하게되는데, 벌써 漢字 천개를 외운 실력으로 그 공부는 매우 쉬웟든 기억이있다.

        수도가 서울로 환도한후 효창동 철도관사에 사는데 옆집에 부산서 부터 알든 경기중학교에 다니든 몇해전 작고한 이중화 란 친구가 자꾸 바람을 넣어서 고등학교는 경기로 옴겨갔드니 거기에도 한문 시간이 매주있엇다.

        그러니 졸업할때까지 한문을 또 3 년을 공부하게된다.

        고등학교 2 학년때 우연히 고희동 화백의 동양화 회고전을 서울 중앙 공보관 화랑에서 본후 크게 감명을 받아 동양화를 꼭 해야겟다고 독학을 시작하는데, 이론적인 교과서가 필요하게되엇고, 찾아낸 책이 바로 芥子圓畵傳 이란 8권으로 된 한문 책인데, 그당시 내 한문 실력으로 60-70 %는 이해가되엇고,

        모르면 윤재정 선생님이란 고등학교 한문 선생에게 들고가서 해독을 하게된다.

        이책은 지금은 영어 일본어등 다번역이돼있지만 그당시에는 번역본이 없엇다.
        동양화 의 역사적 변천을 서술한 교과서인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 문리대 의예과에 들어가니 거기에도 또 "大學漢文" 이란 강좌가 2 년간 계속되어 중국의 유명한 글들을 접하게된다.
        한문선생은 서창제 교수엿고 그분 성함을 아직도 기억하고있다.


        그때 老子의 도덕경을 옥편을 찾어가면서 다 읽어 본 기억이 있다. 그러니 한문공부들 근 8 년 동안 하게되고 자습으로 중국 서화계통책을 계속 사서 보아오니 한문글자는 한국을 떠나도 아직도 기억하고 지금도 옥편을 가끔 뒤진다.


        집사람이 한국 말을 못해, 한국말을 근 반세기 않써도 기억하는걸 보면,
        65 년전 시작한 한자가 아직도 머리에 남아있는게 신기할 뿐이다.

        요새나온 중국책들은 漢文 지식만 가지곤 읽을수 없게되어

        중국어 四週間이란 책으로 군대 3 년간 독학을 하게되니 읽느데는 문제가 덜한데, 
        발음은 전혀 않통하는 현대 중국어를 접하게된다.

        中共이 문자개혁을 해서 우리가 배운 한문으로 요새글은 또 이해가 않되는데, 簡字表 를
        보고는 새로 만든 글자 1000 여개 익히는것은 매우 쉬운일이엿다.

        지금 까지 중국 여행을 4 번 햇는데 (두번은 가이드 없이) 漢字 지식을 유감없이 이용하게된다.


        질문이 있으면 漢字로 종이에 쓰고 양쪽 귀에  동그래미를 손고락으로 계속 그려 대면, 중국사람은 웃으면서   "聾者마?"

        하면서
        "귀가 먹엇냐" 하고 불쌍이 여겨 더 친절하다.
        얫날 우리 조상들이 중국사람과 통화하든 소위 筆問答이다.

        거기다가 書藝 공부를조금 햇으니 한자를 정식으로 古文體로 종이에 유창히 쓰니,
        진짜 유식한 중국사람으로 알고 더 친절한것 갔앗다.

        아직도 이곹 Napa 집에는 중국 詩書畵관계서적이 내 수장서적의 半이되고
        한문 옥편이 몇개 굴러다닌다.



        (다음은 불어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로 고생한 얘기를 써보겟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醫大 간다고, 로마어( 라틴어) 도 일년햇으니, 자그마치 6 個國語를 강제로 주입하게 만들어놧으니, 세계에 이렇게 애들 학대 하는 나라가
        더 있을찌 궁금하다.)


No. Subject Date Author Last Update Views
Notice How to write your comments onto a webpage [2] 2016.07.06 운영자 2016.11.20 19064
Notice How to Upload Pictures in webpages 2016.07.06 운영자 2018.10.19 33663
Notice How to use Rich Text Editor [3] 2016.06.28 운영자 2018.10.19 7314
Notice How to Write a Webpage 2016.06.28 운영자 2020.12.23 45201
525 크리미아 반도에 관련된 여성얘기 2014.03.06 민경탁*65 2014.03.06 2652
524 국사 교과서에 그려진 일제의 수탈상과 그 신화성 Ⅲ. 식량의 약탈 [1] 2013.11.05 김영철*61 2013.11.05 2650
523 프랑스인이 쓴 1899년 울릉도 조사보고서 발견 [3] 2014.01.11 황규정*65 2014.01.11 2594
522 대한민국 ‘공돌이’ 성장사 추적기 [주간조선] 2013.11.16 김영철*61 2013.11.16 2547
521 한국국민의 敵 [4] 2014.01.14 민경탁*65 2014.01.14 2536
520 [역사] 한반도 4-5 세기 정세 (역사의 오리 무중) [4] 2013.12.27 민경탁*65 2013.12.27 2508
519 Preview of Changduk Palace, Secret Garden. [1] 2014.04.18 민경탁*65 2014.04.18 2399
518 My Grandfather at Oberlin College in 1929 [8] file 2016.08.01 조성구*65 2016.08.21 2346
517 It is NOT a brunch book but a critical review! [2] 2021.05.01 이병붕*63 2021.05.01 2284
516 虞姬故里(우희고리): 우미인 고향 2015.04.11 정관호*63 2015.04.11 1929
515 MY FATHER'S FOOTSTEPS IN AMERICA [6] 2015.02.06 정관호*63 2015.02.06 1917
514 [RE] 그렇게 오래 배운 한문을 어디다 써먹엇는가? [1] 2014.09.13 민경탁*65 2014.09.13 1902
513 [Video Documentary] 글로벌 다큐멘터리 - 인류, 우리 모두의 이야기 [2] 2014.09.22 Rover 2014.09.22 1812
512 [漢文]出師表(출사표): 제갈공명의 출사표 [4] 2015.03.26 정관호*63 2015.03.26 1806
511 Photos of forgotten history [2] 2014.03.17 김영철*61 2014.03.17 1802
510 옛날 사진들 [2] 2014.04.25 민경탁*65 2014.04.25 1789
509 ebook 발간: 한국은 왜 유일한 분단국가일까? [4] 2021.04.15 온기철*71 2021.04.18 1691
» 外國語文과 씨름 65 年 [5] 2014.09.11 민경탁*65 2014.09.11 1684
507 Why Mao couldn’t invade Taiwan before Korean War? 2020.11.29 온기철*71 2020.11.30 1683
506 [Video] Japanese Surrender, 9-2-1945 [5] 2015.04.12 황규정*65 2015.04.12 16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