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timental Verses at Heritage Sites IV of V
The Master of Shu arrived at the Three Gorges coveting after Wu,
Unsuccessful was his attempt and soon died he in the Palace of Eternal Peace.
Now barren mountains once flew his banners and flags,
Where once majestic and palatial now lies a shrine in the wild without upkeep.
On the cypress trees in front, water cranes nestle amongst the green,
Every summer and winter solstice come villagers to pay respect to their heroes.
Next to the Master's shrine is another that enshrines his premier,
Posterity worship both the master and the premier and hold them in high
蜀主 劉備(촉주 유비)
蜀主窺吳幸三峽: 유비(劉備)가 오를 치려고 삼협으로 진격했으니
重慶市奉節縣 永安宮; 중경시 봉절현 영안궁 옛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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詞句註釋(사구주석)
蜀主(촉주):유비(劉備)를 가리킴
無奈(무내): 어찌할 수 없다.
永安宮(영안궁):현재 중경시 봉절현(重慶市奉節縣)에 있다.
野寺(야사): 현재 와룡사(卧龍寺)로서 사당은 궁(宮) 동편에 있다.
伏臘(복랍):삼복(三伏)과 납월(臘月을 아울러 이르며 촌민이 제사를 지낸다.
白話譯文(백화역문)其四(4회)
劉備出兵伐吳就駐紮在三峽,無奈戰敗歸來去世在永安宮。
유비가 출병하여 오를 정벌함에 삼협에 주둔하니, 전패만 하고 돌아와 영안궁에서 세상을 떠났도다.
昔日翠旗飄揚空山浩浩蕩蕩,永安宮湮滅在這荒郊野廟中。
그 옛날 날렸던 푸른 깃발은 빈산에서 힘찼건만, 영안궁은 사라져서 황폐한 들에 사당속에 있도다.
古廟裏杉松樹上水鶴做了巢,每逢節令仍舉行隆重的祭祀。
옛 사당속 삼나무위에 물학이 깃들고, 절기를 만날 때마다 융중한 제사를 거행하였도다.
丞相的祠廟就在先王廟臨近,君臣共同享受着禮儀和祭禮。
승상의 사당은 선왕사당에 가까이 있기에, 임금과 신하가 ㄷ함께 예의와 제례를 향수하도다.
歷史年表(역사연표)
207年:曹操統一北方。조조가 북방을 통일하다.
208年:孫權、劉備聯軍於赤壁之戰大敗曹軍。손권과 유비가 연합하여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214年:劉璋投降,劉備入主益州。유장이 항복하고 유비가 들어와서 익주 주인이 되다.
221年:劉備於成都稱帝,國號仍為「漢」,史稱「蜀漢」。유비가 성도 에서 황제가 되었고 국호를 한이라 하니, 역사에 촉한이라 칭한다.
222年:劉備戰敗於夷陵之戰,孫權取得大部分荊州。유비가 이릉전에서 패하여, 손권이 형주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223年:劉備病歿,諸葛亮輔佐其子劉禪,並與孫權恢復同盟。유비가 병사하여 제갈량이 그 아들 유선을 보좌하고, 손권과 더불어 동맹을 회복하였다.
227年:諸葛亮第一次北伐。제갈량의 제1차 북벌.
234年:諸葛亮最後一次北伐,同年病死於五丈原。제갈량의 최후 북벌로 같은 해에 오장원에서 병사하였다.
240年:蜀汉大將姜维第一次北伐。촉한대장 강유가 제1차 북벌하다.
262年:姜维最後一次北伐。강유의 최후의 북벌하다.
263年:曹魏滅蜀漢。조조의 위국이 촉한을 멸하다.
264年:滅蜀元勳鍾會及姜維叛變,被司馬昭平定,钟会及姜维被殺。촉을 멸한 원훈 종회와 강유가 반란을 일으켜, 사마소가 평정하고 종회와 강유는 피살되었다.
作品鑑賞(작품감상)
第四首詩因永安宮而追懷劉備。詩人稱頌了三國時劉備和諸葛亮君臣一體的親密關係,抒發了自己不受重用抱負難展的悲怨之情。
제4 수시는 영안궁으로 인하여 유비를 생각하고 그리워하였다. 시인은 삼국시 유비와 제갈양의 군신이 일체가 된 친밀한 관계를 칭송하였고, 본인 자미가 중용을 받지 못하여 포부를 펴기 힘듦을 슬퍼하는 정을 토로하였다.
촌늙은이가 유비와 제갈량 군신의 제사를 지내니, 유적의 흐름을 돋보이게 하도다.
이 시가는 유비가 동오를 습격했다가 실패하고, 영안궁에서 졸하였음을 먼저 서술하였고, 유비의 한나라를 부흥할 대업이 끝장났음을 계속 탄식하였으니, 푸른 깃대와 군막은 오로지 빈산 상상속에 발자국을 찾을 뿐이며, 옥전은 허무하고 아득하며, 소나무 삼나무위에 물새가 살고 있도다.
유비의 생전사업을 노래하고, 대업을 이루기전에 몸이 먼져 떠났음을 한탄하고, 헛되히 사우를 남겨 인간의 황량한 경상을 준다. 최후로 유비와 제갈양 군신의 한몸임을 찬양하여, 천백년동안 제사를 받으니, 무한한 경의를 표시하고 무한한 감개를 표현하도다.
이시 전편은 선주사당을 지나 무후사당이 인근에 있음을 묘사하고, 나아가 유비와 제갈양 만날 지음 동심일체가 되었음을 찬송하고, 작자는 자기의 쫓겨났음을 암시하였고, 정치이상을 실현지 못하였으며, 포부를 이룰 수없었음을 깊이 탄식하였다. 예술 묘사상 전 몇수는 같지 않았다. 시 전체는 평이하고 자연스러웠고, 경상과 물형을 그림이 명랑하였기에, 고적을 읊음이 위주였으니, 함축된 채로 은연중에 읊었다.
第四首詠懷的是劉備在白帝城的行宮永安宮。詩人稱頌了三國時劉備和諸葛亮君臣一體的親密關係,抒發了自己不受重用抱負難展的悲怨之情。
作者借村翁野老對劉備諸葛亮君臣的祭祀,烘托其遺蹟之流澤。詩歌先敘劉備進襲東吳失敗而卒於永安宮,繼嘆劉備的復漢大業一蹶不振,當年的翠旗行帳只能在空山想象中覓得蹤跡,玉殿虛無縹緲,鬆杉棲息水鶴。歌頌了劉備的生前事業,嘆惋大業未成身先去,空留祠宇在人間的荒涼景象。最後贊劉備諸葛亮君臣一體,千百年受人祭祀,表達了無限敬意,發抒了無限感慨。
此詩通過先主廟和武侯祠鄰近的描寫,進而讚頌劉備、諸葛亮君臣際遇、同心一體,含有作者自己論事被斥,政治理想不能實現,抱負不能施展的感慨。在藝術描寫上和前幾首又有所不同。全詩平淡自然,寫景狀物形象明朗,以詠古蹟爲主而隱含詠懷。
名家點評(명가점평: 대가해설)
明代李東陽《麓堂詩話》:文章如精金美玉,經百鍊歷萬選而後見 ……杜子美《秋興》《渚將》《詠懷古蹟》……終日誦之不厭也。문장은 정교한 금, 아름다운 옥이니, 수백번 시도하고 수만번 선택후에 보니, 종일 읊어도 싫지 않도다.
明代王嗣奭《杜臆》:五首各一古蹟。다섯 수 각각이 옛 자취로다.
清代仇兆鰲《杜詩詳註》:盧世榷曰:杜詩《諸將》五首,《詠懷古蹟》五首,此乃七言律命脈根蒂。이는 7언율시의 명맥이요, 꼭지로다.
清代冒春榮《葚原詩説》:讀《秋興八首》《詠懷古蹟》《諸將五首》,不廢議論,不棄藻績,籠蓋宇宙,鏗戛鈞韶,而縱橫出沒中,復含藴藉微遠之致,目為大成,非虛語也。의론을 버리지말고, 성취 또한 버리지 말고 우주를 덮어, 창소리 녹로의 아름다움은 종횡으로 출몰중, 거듭 종합적 함축과 미원의 풍취(微遠之致)이니, 대성을 보니 허어가 아니로다.
清代趙翼《甌北詩話》:今觀夔州後詩,惟《秋興八首》及《詠懷古蹟》五首,細意熨貼,一唱三嘆,意味悠長。주의하여 다림질하니, 한번 (노래를) 부르기에 세번 탄식하여, 읙미가 유유히 길도다.
明代王嗣奭《杜臆》:其四:詠先主祠。而所以懷之,重其君臣之相契也。……幸三峽而崩永安,直述而悲憤自見。선주의 사당을 읊음에 회고하기에 군신의 맺음이 중하였도다. 삼협으로 행하여 영안에서 붕하였으니 직접 서술하여 비분(悲憤)함이 스스로 보이도다.
明代金聖嘆《杜詩解》:前解,首句如疾雷破山,何等聲勢!次句如落日掩照,何等蒼涼!虛想當年,四,實笑今日也。……“翠華”、“玉殿”,又極聲勢,“空山”、“野寺”,又極蒼涼。只一句中,上下忽變,真是異樣筆墨。수구에서 심한 번개가 산을 무너뜨리니, 소리의 세력이 어떠한가! 차구에서 떨어지는 해가 빛을 가리니 얼마나 처량한가! 취화와 옥전(翠華 玉殿)은 지극한 성세였고, 공산과 야사는 또한 극히 창량(蒼涼)하도다. 오로지 한구속에서 홀연히 변하니, 진실로 다른 모양의 붓과 먹(筆墨)이로다.
清代何焯《義門讀書記》:先主失計,莫過窺吳,喪敗塗地,崩殂隨之;漢室不可復興,遂以蜀主終矣。所賴託孤諸葛心神不二,猶得支數十年之祚耳。此篇敍中有斷言,婉而辨,非公不能。선주가 실계하니, 오를 엿봄을 놓치지 말았어야했건만, 완패하여 붕함이 딸았도다. 한실은 부흥할 수없었고, 드디어 촉주로 끝났음이로다. 나는 믿건대 제갈의 마음이 둘이 아니기에 탁고(託孤)를 하였고, 오히려 수십년의 복[福]을 얻었을 뿐이로다. 이편 서술속에서 단언컨대, 아름답게 분별하였으니, (두보)공이 아니면 가능치 못하였다.
清代浦起龍《讀杜心解》:三、四語意,一顯一隱,空山殿字,神理如是。五、六流水遞下。……結以“武侯”伴説,波瀾近便,魚水“君臣”,歿猶“鄰近”;由廢斥漂零之人對之,有深感焉。3, 4 글뜻은 한번 나타나고 한번 숨었으며, 빈산에 궁전이라하니 신리(神理: divine principle)이 이와같다. 5, 6에서 흐르는 물이 갈리고, 맺임에 무후거 동반에게 말하니, 파도는 가깝고, 어수는 군신(魚水君臣)이라, 인근에서 죽었고, 버림받고 떠도는 사람이 대하니 깊이 감동하였다.
清代楊倫《杜詩鏡銓》:曰“幸”曰“崩”,尊昭烈為正統也。是《春秋》書法。행(幸)을 말하고 붕(崩)을 말하였으니, 소열을 존중하여 정통을 만들었으리 이는 춘추의 서법[《春秋》書法]이로다.
清代盧麰、王溥《聞鶴軒初盛唐近體讀本》:起二便是峭筆。三、四低徊,憑弔備極迷離。五、六“巢”、“走”二字法高,而“走”字尤似出意。結腐而峭,筆可排山。2는 엄한 붓이었다. 3, 4는 낮개 해매며, 유비를 조상하며 극히 모호하였다. 5, 6에서 소와 주[巢 走]자는 법이 높았기에 주자는 뜻밖에 나오는 듯하다. 맺음에 부패하며 가파르니(腐而峭), 붓은 산을 떠밀기에 쓰리.
清代黃叔燦《唐詩箋註》:此詩似無詠懷意,然俯仰中有無限感慨。이시는 회포를 읊을 게 없어 보이지만, 굽어보고 처다봄에 무한하 감개가 있다.
清代劉濬《杜詩集評》:抑揚反覆,其於虛實之間,可謂躊躇滿志。억양이 반복하니 거기에 허와 실 사이(虛實之間)이며, 가히 가득한 뜻을 주저함이로다.
清代佚名《杜詩言志》:此一首是詠蜀主。而己懷之所繫,則在於“一體君臣”四字中。蓋少陵生平,只是君臣義重,所恨不能如先主武侯之明良相際耳。이 한수는 촉주를 읊었다. 회고하고 묶어보니, 일체군신이란 넉자속에 있도다. 무릇 소릉의 생애에 오로지 군신의 의(君臣義重)가 중할 뿐이니, 한하는 바 선주가 무후의 밝음과 유능을 가질 수없음이다.
清代方東樹《昭昧詹言》:“古廟”二句,就事指點,以寓哀寂。山谷《樊侯廟》所出。고묘(古廟) 2구는 사물에 충고를 주니, 슬픔과 적막을 보내도다.
清末高步瀛《唐宋詩舉要》:吳曰:先主一章,特以引起武侯。선주 1장은 특히 무후를 이끌어 일으켰다.
作者簡介(작자간개)
두보는 당대현실주의시인이다. 자는 자미였고, 일찌기 자칭 “소릉야로”라고 하였다. 진사시험에 오르지 못하였고, 일찌기 겸교공부원외랑에 임명되어서, 세상에서 “두공부”라 칭하였다. 송이후에 존칭을 받아 “시성”이라 하였고, 이백과 더불어 “이두”라 함께 칭한다.
그 시는 사회의 모순을 대담히 폭로하였고, 궁하고 괴로운 백성에 대하여 깊은 동정을 보냈고, 그 내용은 심각하였다.
허다한 우수 작품은 당대에 성으로부터 쇠로 회전함을 나타내 보였고, 더욱이 율시에 우수하여 “시사”라고 칭하였다. 예술상 각종 시가형식을 운용함을 잘하였고, 율시에 더욱 우수하였으며; 풍격이 다양하며, 침울함이 위주였고, 언어가 정련되고, 고도의 표현능력을 갖추었다. 시는 1400여수가 있으니, 《두공부집》이다.
唐代現實主義詩人。字子美,嘗自稱少陵野老。舉進士不第,曾任檢校工部員外郎,故世稱杜工;部。宋以後被尊為“詩聖”,與李白並稱“李杜”。
其詩大膽揭露當時社會矛盾,對窮苦人民寄予深切同情,內容深刻。許多優秀作品,顯示了唐代由盛轉衰的歷史過程,因被稱為“詩史”。在藝術上,善於運用各種詩歌形式,尤長於律詩;風格多樣,而以沉鬱為主;語言精煉,具有高度的表達能力。存詩一千四百多首,有《杜工部集》。
Kwan Ho Chung - Jan 0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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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록에 유비가 관우의 죽음에 복수하려고, 손권의 동오를 정벌하였지만,
전패하고 본국 촉으로 오지 못하며, 영안궁에서 붕하였음을 읊었다.
시 내용은 많이 비장하다.
생각건대 삼국지 시작에 유비, 관우, 장비 이 세 영웅호걸이 복사꽃 핀 정원(도원)에서 결의행제를맺고, 한실부흥과 백성을 도탄에서 구한다는 장엄한 결의를 하였고, 같은 날 태어나기를 원치 않았고, 같은 날 죽기를 맹서하였다.
그 맹서는 비극적으로 거의 맞았다. 관우, 장비, 유비의 치례로 세상을 떠났으니!
그러나 한실부흥은 AD 223에 유비의 죽음과 더불어 끝나버렸으니 이는 지금부터 1791년 전 일이었다
그 불가능한 계획을 제갈량 일인에게 맡기면서...
제갈량은 여섯번 위를 공격했지만, 성공치 못하고 결국 오장원에서 병사하게 되니, 촉한의 운명도 끝나가고 있었다.
이 역사를 시 두편 즉 제4회와 제5회로 두보가 고적 방문하고 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