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06 20:28
'진수무향(眞水無香)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물 가운데서도 참으로 깨끗하고 맑은 물은 일체 잡스러운 내음을 풍기지 않는 법' 이라는 뜻이지요. 그 글귀에서 한자씩 따서 진향(眞香)이라 예명을 지은 기생(妓生)이 있었으니, 본명은 김영한(英韓)입니다. 그 녀는 우리와 동시대를 얼마전까지 살었고, 죽기전 1,000억대가 넘을 성북동 북악산 자락에 위치했던 그가 소유했던 요정 ‘대원각’ 을 ‘길상사’ 절터로 기증하여 세인들에게 회자되었으며, 그의 유해는 유언대로 화장되어 한겨울 눈이 하얗게 쌓인 길상사 마당에 뿌려져 날려보내며 생을 마감한 사람입니다. 또 妓生 眞香이는, 한국 현대시사(詩史)의 전설적 詩人이 된 ‘백석’을 지독히 사랑했던 기녀로 그 사랑 이야기는 문단뿐아니라 세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짧은 사랑후 이별하게된 백석(白石)과는 해방후에 같은 하늘 아래서 살면서도, 북에 있는 그를 사무치게 그리워만 할뿐, 남북분단이라는 비극에 파묻혀, 영영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 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사랑 이야기를 알기쉽게 한편의 시로 축약(縮約)하여 표현 해낸 시인이 있으니, `내가 사랑하는 바다 성산포’라는 詩로 우리에게 이미 친숙한 ‘이생진’ 시인의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 란 詩입니다.
함흥 기생 眞香은 24살때, 25세인 시인 靑年敎師 백석(白石)을, 어느 연회 자리에서 만납니다. 번개가 섬광(閃光)을 치듯, 찰나적인 그 만남은, 서로 식을줄 모르는 사랑의 불만 붙은채, 그리움만 남기고, 평생 재회만을 애타게 기다리며 세월만 흐르게 되는 비극적인 사랑인 運命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첫 만남에서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때 까지 이별은 없을것’ 이라는 백석의 약속은, 바로 즉시 그의 집안의 완강한 반대로 오래가지 못합니다. 당시 장래가 촉망되던 엘리트 시인 ‘백석’의 집안에서는 당연히 그의 부모가 기생과의 만남을 극력 반대하며 서둘러 다른 규수와 강제 결혼을 시킵니다. 백석은 고민 끝에 결혼식날 초혼밤. 신혼방을 빠져 나와 한양에 있는 영한에게 달려와 함께 만주로 달아 나자고 설득합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백석을 사랑하는 영한은, ‘백석의 장래'를 위하여는 자신이 사라져 주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사랑하기에 헤어져야 한다”는 신파조 이야기처럼, 따라나서지 못하고 헤어지게 됩니다, 아 ! 애석하다 ! 그것을 끝으로 그 녀는 숨 넘길 때까지 백석을 향한 사무친 그리움만 쌓아 갔을뿐, 이승에서는 영영 만나지 못합니다. 영한과 이별후, 그때 심정을 후일에 백석은,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라는, 현대시사에도 길이 족적으로 남을 명시로 써서 표현합니다. <글 : 문나무> Reflections Of Love/ Hilary Stagg Edited by jongho |
2009.10.06 20:45
2009.10.07 09:49
옛날 사람들의 사랑과 Romance는 현대 우리 사람들의 그것과는 상대가 않되게
깊고 성실했던것으로 보입니다.
요새 세상에는 사랑이나 로맨스보다는 돈과 보임새가 우선권을 차지하는지라
이런 얘기는 아마 멸종해버리지 않었나 생각되는군요.
오랫만에 보는 "사랑의 眞香"을 느끼게 하는 romantic한 좋은 글입니다.
다음에 부친 답글의 자야에대한 글을 읽어보십시요.
아마 훌륭한 연속극이 될지도 모르는 스토리입니다.
2009.10.08 02:22
역사이래 수많은 아름다운 남녀간의 사랑들이 있었건만
이렇게 이루어지지 못한사랑들이 더욱 애절하게 느껴지며
그중에서도 문인들같은 예술인들의 사랑은 이렇게 예술적인
표현으로 아름답게 승화되어 만고에 빛을내며 남아있읍니다.
표현을 하지않았다하여 그사랑들이 어찌 아름답지 않다
말할수 있을까만은----. 규정
2009.10.12 06:38
서 종호라고 제가 아는 의사의 작품입니다.
그곳은 전에 요정이었을 때도 가 보았고, 길상사로 바뀌고 나서 여러번 갔었지요.
2박 3일 수련도 이곳에서 받았습니다.
이 절의 회주는 법정스님, 스님으로부터 법명과 염주한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제 가을바람 소슬히 불때 다시 한번 가보렵니다.
참 서가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집이 꽂혀 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