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나라 바다 멀리 물새가 날으면 뒷동산에 동백꽃도 곱게 피는데 뽕을 따던 아가씨들 서울로 가고 정든 고향 정든 사람 잊었단 말인가? 찔레꽃이 한 잎 두 잎 물위에 날으면 내 고향에 봄은 가고 서리도 찬데 이 바닥에 정든 사람 어데로 갔나? 전해 오는 흙냄새를 잊었단 말인가? > 고향초는 본래 발생년도와 누구 작품인지 알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어떤 곳에서는 김다인 작사에 박시춘 작곡으로 되어 있다. 박시춘은 '혈서지원'의 작곡가이다. 그런데 김다인이 누구인지 알 수없다. 결국 작사자는 실명이라고 해야 겠다. 물새 동백꽃 뽕나무 찔레꽃 Youtube 송민도 주현미 조미미 악보 Kwan Ho Chung - March 11, 2023 |
2023.03.11 03:39
2023.03.11 13:28
제가 꽤 오래전에 직녀성 이란 글을 쓴적이 있었는데, 박영호 작사 라고 되어 있어요. 그때의 글과, 조중행 선배님의 댓글을 인용하지요. 즉 김다인은 박영호 입니다.
직녀성이라는 노래는 1941년에 발표된 곡인데 박영호작사 김교성작곡 백난아 노래로 되어 있습니다. 작사자 박영호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번지 없는 주막 이란 노래의 작사자로 해방 전 친일의 행적이 있고 이후 월북한 작가라서 남한에서는 작사자로 이름이 사용 못되었다가 이제는 복원이 되었지요(처녀림 또는 추미림 김다인등이 박영호 예명).
작사 활동 외에도, 박영호( 당시 대표극장 "동양극장" 전속 극작가)도 그 부인 이선희도 일제 강점기때 희곡 ,소설,언론사 등의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모윤숙, 최정희, 노천명등과 --)고 알려져 있읍니다.
공산주의가 무엇인지---해방후, 6.25 때 둘 다 월북, 그후 별다른 업적없이 아깝게 젊은 나이로 휴전 전후에 돌아간 듯 하고---
문필가 이 선희 가 돌아가신 장모님의 인척이 되어 이 두분에 대해 약간 알고 있었고---
http://www.snuma.net/xe/74074
2023.03.11 13:55
어쩌면 고항은 실존하는 곳이 아닌 환상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과거의 기억이나 경험들이 미화되어 다시 나타나는 착각일수도 있습니다.
한곳에서 평생을 산 사람도 옛 추억을 생각하며 지금 사는곳이 아닌
그때의 그곳을 그리워 할지 모릅니다.
"고향에 돌아와도 내 살던 고향은 아니러뇨"
고향은 누구나 가지고 싶어하는 무의식속의 샹리라가 아닐까요.
사실 고향을 떠나 지구의 반대편에 살면서 이 글을 읽노라니 문득 향수를 느낍니다.
좋은 글, 노래 감사 합니다.
2023.03.11 14:56
Dr. 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 가곡의 원 작곡인 박영호를 완전히 찾고 또 그의 소개를 추가합니다.
해방후 그의 친일문제가 나왔고, 또 일제시절에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에 가입도 하였군요. 나라는 이미 빼앗긴 후였고, 문학에 눈이 띄어서 그런 길도 택하였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결국 북조선 연극인동맹에 초대 위원장까지 하였고, 결국 육이오전 때 조선인민군종군작가로 근무하다가 사망한 분주 다양한 인생이었군요. 그의 기록도 이 웹페이지에 실으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03.11 16:37
송민도, 주현미씨들의 발성이 정말 옛날의 노래 같군요.
요새는 Voice위주보다 Emotional Feeling (감정)위주로 불르는데 세월이 많이
지나간 듯합니다. 하지만 이 노래와 가사는 정말 소중한 우리의 추억이겠지요.
더구나 고향을 떠난 우리에게는.....
2023.03.12 05:29
친일 문인에 대한 나의 생각: 여기 작사가 박영호가 친일문인명단에 걸렸기에 나도 일반적인 의견이 있다. 그 당시 글 쓴 사람중에 친일이 아닌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광수같이 일본제국을 찬양한 건 용납할 수없지만, 자기의 Career을 발전시키는 동안에 일본정책에 반대치 않고 따랐기에 친일이라고 한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찾기 힘들겠고 그보다도 나라가 이렇게 된 건 국왕 즉 고종, 순종과 친일 대신들의 책임이 아닌가? 백성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백성은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순종하고 살았지 않았나? 고종이나 순종이 일본에게 나라를 팔아먹을 때 백성에게 사죄를 해야하지 않았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어찌 하여 이꼴로 떠나게 됬다는 말이 있음을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우리 후세가 친일문인이라고 일제히 매도하지 않았으면 한다. 일본이 떠난지 78년이나 되었는데, 열린당 인물들은 지금도 신이 나서 친일파라고 현정부를 욕하고 있지만, 이건 어불성설이다. 나 또한 친일이 절대 아니지만, 현재로 일본과 상호협조하여 북한의 위협에 대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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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변히 고향이랄 게 없는 내게도 "고향" 혹은 "내고향"하면 가슴이 울컥하는 그리움이 솟구친다. 곰곰히 따져보면 그래도 돈암동지역에서 오래 살았기에 그곳이 고향인가하는 생각도 든다.
이 노래에는 애조가 있다. 뽕을 따던 아가씨들 서울로 갔다니, 아마 돈벌기가 쉽기에 고향을 떠났겠고, 또 이바닥에 정든 사람들은 더 좋은 기회를 찾고자 정든 고향을 등지고 떠났다고 노래하였다.
그러니 오래간만에 고향에 돌아온 사람이 만난 남은 이들은 어린이나 늙은이 뿐일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