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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워커힐과 김종필

2023.06.15 16:10

온기철*71 Views:65

https://realty.chosun.com/site/data/html_dir/2020/10/23/2020102302446.html

올해 개관 57년을 맞은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은 서울 광진구의 동쪽 끝 한강을 굽어보는 아차산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워커힐 호텔은 박정희 대통령 집권 초기 김종필이 주도해 지었다.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고 군사 정권을 이끌던 김종필은 버거 미국대사, 멜로이 유엔군사령관과 자리를 갖는 일이 잦았다. 1961년 7월 하순 김종필이 멜로이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다가 주한미군 위락시설이 화제가 됐다.

 

2.2. 워커힐[편집]

중앙정보부가 외화 획득의 방편으로 UN군의 휴양지를 건설하기 위하여 1961년 서울특별시 성동구 광장동에 워커힐 호텔을 지으면서 비롯된 것이다. 이들은 호텔건립공사가 자금난에 허덕이자 정부주금(政府株金) 5억 3,590여 만원을 빌려주어 호텔을 짓도록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막대한 공작자금을 유용하였다. 또한 공권력을 휘둘러 교통부장관과 각 군에 여러 장비를 제공하게 하고 인력을 동원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1961년 9월, 군사정권은 워커힐을 짓기 위해 성동구 광장동 부지 18만 평을 수용했다. 이때 워커힐 부지는 당시 10대 재벌의 하나로 유명하던 '대한전선그룹' 설경동 회장의 땅이었다. 하지만 나는 새도 눈만 깜빡이면 떨어뜨리는 게 군사정권이었고, 김종필의 중앙정보부는 국가 명의로 설경동의 부지를 헐값으로 사들였다.

워커힐 건설사업에는 중앙정보부의 석정선(중앙정보부 제2국장), 김용태(중앙정보부 경제고문) 등이 개입했다. 이들은 교통부가 워커힐 건설을 주관토록 조처했는데, 교통부 장관 박춘식은 워커힐 건설공사가 자금난으로 부진해지자 워커힐 이사장인 임병주(당시 중앙정보부 제2국 1과장, 중령)에게 정부주식 출자금 5억 3천 600만 원을 건설자금 명목으로 빌려주었다. 정부가 아직 공사에 드는 비용도 책정되지 않은 시점에 가불 형식으로 거액을 빌려 준 것은 야당 의원들의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건설을 위해 투입된 비용은 2억 8천만 원(220만 달러)에 불과했으며, 이는 형무소 죄수들과 각 군의 공병들의 무상 노역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부족한 장비는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에서 지원받아 문제를 해결했다. 또한 워커힐 공사에 필요한 일본제 수입품에 대하여 관세를 물지 않았는데,그렇게 무대 장치로부터 시멘트에 이르기까지 일제품을 수입하면서 중앙정보부는 무관세 무검사로 도입하여 150만달러(2억여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4]. 그런 까닭으로 애초 서울대 공대 교수나 외국 건축가들이 800만 달러에서 1000만 달러가 소요될 거라고 예상한 워커힐 건축을 불과 220만 달러로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앙정보부는 4,158대의 각종 장비와 연인원 24,078명을 무상 노역케 했으며, 건설비 명목으로 책정한 5억 3천 600만원 중 실제 공사에 투입된 2억 8천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2억 5천여만원을 착복했다. 참고로 1963년도 한 해 국가 예산이 768억원이었다. 한 해 국가 예산의 0.6%인 5억원의 거액을 투입한 것이니,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350조(2014년도 국가 예산)의 0.6%인 2조원을 투입한 셈이다.(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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