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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왕소군 고향에서

2024.03.08 04:22

정관호*63 Views:56

唐诗三百首- 杜甫- 咏怀古迹五首·其三- YouTube


 
詠懷古蹟 其三 杜甫
영회고적기사 두보

 
詠懷古跡 其三 杜甫〔唐代〕
영회고적 3회 두보 (당대)

群山萬壑赴荊門,生長明妃尚有村。
군산만학부형문, 생장명비상유촌.

一去紫台連朔漠,獨留青塚向黃昏。
일거자대연삭막, 독류청총향황혼.

畫圖省識春風面,環珮空歸夜月魂。
화도성식춘풍면, 환패공귀야월혼.

千載琵琶作胡語,分明怨恨曲中論。
천재비파작호어, 분명원한곡중론.
옛 자취에서 회포를 읊다. 3회
당대 두보

뭇산과 많은 골짜기 지나 형문에 다달으니,
명비가 자랐던 촌이 아직도 있도다.

한번 자대를 떠나 곧장 사막으로 가버리고,
마지막 남긴 외로운 무덤은 황혼을 대하네.
:
그림으로 봄바람같은 미모를 보았다고 믿었고,
옥고리 찬 영혼은 헛되이 달밤에 돌아오네.

천년간 전해오는 오랑캐 비파곡에,
분명히 그 원한을 곡중에서 호소하리!
 
 
為什麼被評為古今詠王昭君詩第一: 위고금영왕소군시제일
Why is it rated as the No. 1 poem in praise of Wang Zhaojun in ancient and modern times:
094:杜甫的《咏怀古迹(其三)》,为什么被评为古今咏王昭君诗第一- 知乎

昭君出漢宮(소군출한궁): 이때 소군은 얼마나 슬펐고, 또 무서웠을까!
山形の文化財検索サイト「山形の宝 検索navi」

戈壁(과벽: Gobi Desert): 소군이 이 험악한 사막(GOBI)을 넘어서 갔다.
272px-GobiTaklamakanMap.jpg

戈壁風景圖片(과벽풍경도편):고비사막 풍경
戈壁风景图片_戈壁风景素材_戈壁风景高清图片_摄图网图片下载

Youtube



Thoughts on a Historic Site

All mountains rise and fall till they reach Thatched Gate,
‘Tis the home village where was born the Lady Bright.

She left the palace for the desert desolate,
Her lonely tomb still green is left to face twilight.

No picture could portray her face as fair as spring’s
In vain her roving soul returned beneath the moon.

The pipa’s sighed for ages on Tartarian strings,
We can discern her bitter grief in its sad tune.
 
 

白話譯文(백화역문)
其三(3회)

穿過千山萬壑一直奔向荊門,這是美麗的昭君生長的村莊。천산만학을 지나 곧장 형문으로 달리니, 미려한 소군이 생장한 촌장이로다.
她離開漢宮踏入渺遠的荒漠,只留下青冢空向淒涼的黃昏。그녀는 한궁을 떠나 먼 황막으로 들어가, 오로지 청총만 남겨서 처량한 황혼을 대하네.

糊塗的君王依據畫像辨美醜,昭君的靈魂能在月夜中歸來。성정이 흐린 군왕은 그림으로 판단하니, 소군의 영혼은 달밤에 돌아오네.
千百年來琵琶聲迴盪在空中,那是昭君無窮的怨恨和訴説。천년이래 비파 소리가 공중에서 울리니, 이모두 소군의 무궁한 한을 호소함이라.

注釋(주석)

荊門(형문):山名,在今湖北宜都西北。
明妃(명비):指王昭君。
去(거):離開。
紫台(자대):漢宮,紫宮,宮廷。
連(련):通、到。
朔漠(삭막):北方的沙漠。
青塚(청총):指王昭君的墳墓。
省:略。一説意為曾經。春風面:形容王昭君的美貌。
省識(성식): 認識。
環佩(환패):婦女佩戴的玉飾,此處借指美女(王昭君)。一作“環珮”。夜月
魂(혼):一作“月夜魂”。
胡語(호어):胡音。
怨恨曲中論(원한곡중론)(lún):樂曲中訴説着昭君的哀怨。
【注解】

1、明妃(명비):즉 왕장, 왕소군을 가리킴이다. 即王嬙、王昭君,漢元帝宮人,晉時因避司馬昭諱改稱明君,後人又稱明妃。昭君村在歸州(今湖北秭歸縣)東北四十裡,與夔州相近。
ㄱ 2、尚有村(상유촌):아직 촌일세. 還留下生長她的村莊,即古跡之意。
3、一去句:昭君離開漢宮,遠嫁匈奴後,從此不再回來,永遠和朔漠連在一起了。
4, 紫台(자대):자금성을 말하니, 제왕의 거처임. 猶紫禁,帝王所居。江淹《恨賦》:“明妃去時,仰天太息。紫台稍遠,關山無極。”朔漠(삭막):北方沙漠,指匈奴所居之地。
5、畫圖句(화도구):”그림만 보았다!”하니…意謂元帝對著畫圖豈能看清她的美麗容顏。
6、環佩句(환패구):”소군은 이미 흉노 땅에서 죽고 돌아오지 못했으니…”意謂昭君既死在匈奴不得歸,只有她的魂能月夜歸來,故曰“空歸”。
應上“向黃昏”。環佩:婦女裝飾品,指昭君。
7、千載兩句(천재양구):琵琶本西域胡人樂器,相傳漢武帝以公主(實為江都王女)嫁西域烏孫,公主悲傷,胡人乃於馬上彈琵琶以娛之。因昭君事與烏孫公主遠嫁有類似處,故推想如此。又《琴操》也記昭君在外,曾作怨思之歌,後人名為《昭君怨》。여기서 소군과 오손공주를 함께 위로하도다.
8. 作胡語(작호어):비파곡조에서 호인 말 즉 언어가 나왔다니? 琵琶中的胡音。曲中論:曲中的怨訴。

賞析(상석)

這是組詩《詠懷古跡五首》其中的第三首,詩人借詠昭君村、懷念王昭君來抒寫自己的懷抱。이 한무리 시의 제3수는 소군촌(昭君村)을 빌려 읊었고, 자기의 회포를 표현힘에 왕소군(王昭君) 생각을 하였다. 그는 왕소군의 경험을 깊이 느끼며 시를 썼다. 자기의 심각한 동정에 붙이며, 동시에 소군이 고국을 그리워함을 동시에 표현하였고, 따라서 자신의 신세와 애국의 정을 기탁(寄托)하였다. 전시(全詩)의 서사(敘事)는 명확하고, 형상을 돌출(突出)하며, 풍자의 의미는 심각하였다.
。”군산만학부형문, 생장명비상유촌.[羣山萬壑赴荊門,生長明妃尚有村] ” 이 시작 양구는 우선 소군촌의 소재 지방을 지적하였으니, 형주부귀주동북40리(荊州府歸州東北四十里)에 있고, 주소는 지금 호북자귀현의 향계(湖北秭歸縣的香溪)에 있다. 두보가 이 시를 썼던 시기는 바로 기주 백제성에 있을 때였고, 삼협 서편이 지세가 비교적 높았다.
그는 백제성 고처(白帝城高處)에 서서, 삼협 동구(三峽東口)밖 형문산(荊門山)과 그 부근의 소군촌을 바라보았다. 멀리 수백리에 격하였기에 본래 바라볼 수없었지만, 오로지 그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곳까지, 뭇산, 만골짜기를 따라 험하고 급한 강류를 따라, 형문산의 웅기장려한 도경(雄奇壯麗的圖景)에 이른다.
그는 도경(圖景) 즉 그림으로 나타낸 경치로써 이 시의 수구(首句)를 만들어서 기세는 평범치 않았다. 두보가 삼협 강류(三峽江流)를 그렸으니, “많은 물은 수 많은 강으로 흐르니, 구당(瞿塘)은 문 하나로 다투도다. “의 경구(警句)이니, 힌개의 “쟁(爭)”자가 삼협수세(三峽水勢)의 경험을 돌출한다. 그 속에 한개의 “부(赴)”자는 삼협 산세(三峽山勢)의 웅기생동(雄奇生動)을 돌출하도다. 이는 가히 대조하는 취향이로다.
”일거자대연삭막, 독류청총향황론.(一去紫台連朔漠,獨留青冢向黃昏)” : 한번 자대를 떠나 사막에 이르러, 홀로 푸른 무덤을 남겨 황혼을 대하도다. 전 양구는 소군촌을 그렸고, 이 양구는 소군 본인을 그렸다에.
시인은 오로지 이런 간단(簡短)하며 웅혼(雄渾) 유력한 양구(兩句)의 시를 써서 이에 소군의 일생의 비극을 다 그렸다. 이 양구시(兩句詩)의 구사(構思)와 사어(詞語)로 이르되, 두보는 대개 남조강엄의 한부 속 대화[南朝江淹《恨賦》裏的話]를 빌렸으니, “明妃去時,仰天太息: 명비가 떠날 때 하늘을 우러러 깊은 한숨을 쉬었도다. “
자대는 좀 머지만, 관산은 끝이 없다. 군왕을 바라봄이여, 그 어느 때리오? 마침내 거칠어 끊어짐이여! 다른 세상이로다. [紫台稍遠,關山無極。望君王兮何期,終蕪絕兮異域。]단지 자세히 대조한 후, 두보는 양구 시를 요약하여, 개괄적 사상(概括的思想)과 내용의 풍부와 심각(內容的豐富,深刻)에 있어서, 강엄(江淹)을 크게 초과하였다.
청인주한의 두시해의[清人朱瀚《杜詩解意》]에서 말하기를: ”연(連)”자(字)는 변방경치에서 나옴[出塞之景]을 그렸고, “”향(向)자(字)는 한나라 생각하는 마음[思漢之心]을 그렸으니, 붓아래에 정신이 있었고, 그것이 옳았다. 그러나 이 두자만에 정신이 있음에 그치지 않는다.
오로지 상구(上句)의 자대와 삭막[紫台和朔漠: 북쪽에 있는 사막]을 보니, 자연히 한궁을 이별함에 생각이 이르러, 흉노에게 멀리 시집갔던 소군은 만리밖에서, 다른나라 풍속도 다른 환경혹에서 일생을 살아야했다. 하구(下句)에서 소군이 변방밖에서 죽어 장사를 지냈으니, 푸른무덤과 황혼 두 자를 써서 가장 간단히 만들어 낸 글자였고, 특히 대예술적재능을 구비하였다.
일상적 언어속에 황혼 두자는 오로지 시간을 가리키며, 그속에 공간을 참조케 하니, 가없는 대사막에 연결되었음을 참조케하며, 황혼의 하늘이 사방을 덮으며,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큰곳에서 아무거나 먹고 또 소화시키다니! 그러나 오로지 푸른 무덤하나만 남아서 잔디로 덮었으니, 먹어도 내려가지 않고 소화도 되지 않았을것을!
”화도성식춘풍면, 환패공귀야월혼: 畫圖省識春風面,環佩空歸夜月魂”는 전양구를 이어 거듭 진일보하여 소군의 신세를 그려 고국의 정을 그렸다. 화도구(畫圖句)는 제3구를, 환패구(環佩句)는 제4구를 이었다. 화도구가 말하기를, 한원제(漢元帝)는 후비와 궁인들에 대하여 오로지 도화(圖畫만 보았고, 사람을 보지 않았다. 省識(성식)즉 認識(인식)은 略識(약식)을 의미하니, 간단히 안다는 뜻이다. 환패구(環佩句는 그녀의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영원히 변치않고, 비록 몸은 청총(青冢)속에 남았어도, 혼은 달밤에 자랐던 부모의 나라에 돌아온다는 뜻이다.
”이 시의 결말이니, 천년동안 호음(胡音)의 비파곡조를 빌려, 이 전시가 소군에 관하여 지적함에 “애원(哀怨)”이 주제였다. 전면에 이미 반복설명을 겪었고, 소군의 “원한”을 비록 포함하였어도, 황제가 그녀를만나보지 못했음을 깊이 한하였던 원사(怨思)였다; 그러나 주요한 것은 아직도 멀리 이국으로 시집간 여인은 영원히 고향땅을 그리워하고, 그리워하는 근심에 빠졌고, 천백년이 지나도, 자신의 고향과 조국을 그리워하는 깊은 공동감정이 쌓였다.
이 시의 함련(頷聯)은 소군일생의 개괄(概括)이었다. 《漢書;匈奴傳》에 의하면, 한원제 경령원년[漢元帝竟寧元年(前33年)]에 선우가 한조의 사위가 되겠다고 하여서, 원제가 후궁왕장(後져宮良家子王嬙)을 선우에게 시집보냈다. 소군무덤은 지금 내몽고경내에 있다. “변지다백초, 소군총독청.: 邊地多白草,昭君冢獨青( ”변방 땅에 죽은 풀은 많지만, 소군의 무덤은 홀로 푸르도다. “이 양구의 시는 대단히 간단하면서 무궁한 감개를 그리어보내고, 소군의 생전과 사후의 애원(哀怨)을 그렸다.

創作背景

。공원766년 (公元766年)작자두보는 당대종대력원년에 기주를 출발하여 삼협으로 나와 강릉에 이르러 송옥택, 유신고거, 소군촌, 영안궁, 선주묘, 무후사등 고적[宋玉宅、庾信古居、昭君村、永安宮、先主廟、武侯祠等古跡]을 유력하여, 고대의 재사, 국색, 영웅, 명상[古代的才士、國色、英雄、名相]을 깊이 숭경하고 《영회고적 5수》와 본수시 제삼수(本首詩是組詩中的 第三首)를 썼다.

年度考察(연도고찰)
王昭君(왕소군) : (前51年—前15年 BC 51-BC 15 )西漢南郡秭歸(今湖北省興山縣)人,漢元帝時期的宮女、和親女性,古代四大美人之一。“畫工棄市”記載她的生平典故。소군은 북쪽 황무지에 가서 겨우 36세 젊은 나이에 한많은 인생을 끝냈다.
杜甫(712年2月12日—770年),字子美,號少陵野老,謚號杜陵野客、杜陵布衣,唐朝現實主義詩人,其著作以弘大的社會寫實著稱. 두보는 公元766年에 이곳을 방문하였으니, 소군이 세상을 떠난지 786년만에 시성 (詩聖)두보는 소군의 고향을 찾아와서 그녀를 기리는 시를 올렸다.

中國古代四大美女(중국고대사대미녀)
一般稱指四大美人,泛指西施(春秋)、王昭君(西漢)、貂蟬(東漢)及楊玉環(楊貴妃,唐朝),享有「沉魚落雁之容,閉月羞花之貌」。
[일반적으로 서시, 왕소군, 초선 그리고 양귀비를 일컸는다. ]
歷史上,「貂蟬」指的是董卓的婢女,《三國志·呂布傳》提及「卓常使布守中閣,布與卓侍婢私通,恐事發覺,心不自安」,但正史《三國志》、《後漢書》等書中並未記錄該婢女名字。
後世一些書籍提到《漢書通志》記載了「刁蟬」,但該書早已亡佚,史實性已不可考。現大多認為「貂蟬」為後世文人給董卓婢女所起的名字,原先出現在說書話本的故事中,最後由《三國演義》作者羅貫中整理創作出一個完整的形象。
왜 도대체 초선을 사대미녀중에 포함하였는지 알 수없다. 그런 인물에 관한 생평연도와 출생지나 가정에 관하여 전혀 알려진 바가 없어, 실제로 있었던 인물인지 아닌지조차 증명된 것이 전혀 없는 여인일 뿐이다.

名家點評 其三

宋代劉克莊《後村詩話》:《昭君村》云:“畫圖省識春風面,環佩空歸月夜魂,亦佳句。”화도성식춘풍면, 환패공귀원야혼.” 이 또한 가구로다.
明代唐汝詢《彙編唐詩十集》:吳云 :此篇温雅深邃,杜集中之最佳者。鍾、譚求深而不能探此,恐非網珊瑚手。이 편은 우아하고 심오하여 두집중 가장 아름답다. 종과 담이 깊음을 구했으니 이에 이르지 못함은 두렵건대 산호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明代周珽《唐詩選脈會通評林》:徐常吉曰:“畫圖”句,言漢恩淺,不言不識,而言“省識[認識]”,婉詞。郭浚曰:悲悼中,難得如此風韻。五、六分承三、四有法。周珽曰:寫怨境愁思,靈通清回,古今詠昭君無出其右。陳繼儒曰:怨情悲響,胸中骨力,筆下風電。화도구에서 한의 은혜가 낮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성식이란 완곡한 표현이다. 죽음을 애석하고 슬퍼함에도 이러한 풍운을 얻기 힘드네. 원망과 수사를 그리기에 영혼이 통하여 깨끗이 돌아오니, 고금에 소군을 노래함에 대등한 작이 없었다. 원망의 정과 슬픔의 울림이니, 가슴속 뼈 힘이 있고, 붓아래 바람과 번개가 있도다.
明代王嗣奭《杜臆》:소군촌(昭君村)으로 인하여 사람을 슬프게 한다. 소군은 국색이었기에 궁에 들어가 질투를 받았고; 공 또한 국사였기에 조정에 들어가 투기를 받았으니, 서로 같았기에 소군을 슬퍼함에 자신을 슬퍼하였다. 춘풍이 야월과 함께 오니, 의미가 다르도다.
明代王夫之《唐詩評選》:그곳에서 만든 뜻으로 자주 칠하여 날리니, 마치 나무를 색여 연을 만들어 공중에 날려간다. 수구는 극히 좋았으나, “생장명비”위에 썼으니, 부처님머리에 관을 씌운 듯하다. 고로 좋은 구이기는 하지만 찬사를 쓰지 아니하였다. 명비를 읊음에 천고의 재목을 짊어지고 만나지 못함이 십분 애석하다. 만일 실제로 자해를 썼다면 어찌 공귀의 대를 넣을 건가?
明代黃周星《唐詩快》:옛 사람이 평하기를, “군산만학”구는 자못 영웅을 생장한 듯 하지, 미인을 생장한것 같지는 않았다. 진실로??? 미인이 어찌 영웅만 못하단 말인가?
清代仇兆鰲《杜詩詳註》:朱瀚曰;。시작에 가인이 나타나니, 애석하다고 하겠지만, 몸은 절역(絕域)에 의탁하고 말을 오랑캐말이고, 허다한 비분이 있었다. 이 시에 풍류가 흔들리고, 두시는 가장 운치를 갖추었다.
清代吳喬《圍爐詩話》:子美“羣山萬壑赴荊門”等語,浩然一往中,復有委婉曲折之致。자미의 “군산만학부형문”글에서, 호연지기가 오고, 다시 완곡한 어구와 곡절이 있다.
清高宗敕編《唐宋詩醇》:破空而來,文勢如天驥下坂,明珠走盤。詠明妃者,此首第一;歐陽修、王安石詩猶落第二乘。공중을 깨고 내려와, 문세(文勢}는 하늘에서 준마가 아래 언덕으로 달리고, 밝은 구슬은 소반에 구른다. 명비를 읊음에 이 시가 제일이다. 왕안석 시는 아직도 둘째이다.
清代沈德潛《唐詩別裁》:詠昭君詩,此為絕唱,餘皆平平。至楊憑“馬駝弦管向陰山”,風斯下矣。소군을 읊은 시로서 절창이니, 다른 시는 그저 평범하다.
浦起龍《讀杜心解》:결어(結語)에 “원한(怨恨)”2자이니, 이에 시의 귀숙처(歸宿處)로다. 중4(中四)에서 상황을 위로하고 글에는 정이 가득하였다. “일거(一去)”에 원한의 시작이었고, 청대의 “독류(獨留)”는 원한의 매듭이었다. “화도식면(畫圖識面)”은 생전에 실총의 원한[生前失寵之怨恨]을 가히 알 수있었다. “환패귀혼(環佩歸魂)”은 사후에 의지가 없으니, “원한”이 얼머나 깊겠는가?
清代楊倫《杜詩鏡銓》:기구(起句)애소 지령(地靈)을 따라 들어감을 말하니, 다소 정중하다. 이자덕(李子德)이르되; 오로지 명비를 말하였지, 시종 말없는 토론이었고, 모든 걸 포함하였기에 후인들은 모두 따를 수없었다. 왕원정(王阮亭)이 이르되, 청구(青邱)는 이런 것만 추린다. 청대 이영( 清代李鍈)은 [시법역간록《詩法易簡錄》]에서, 붓을 드니 또한 천개의 바위가 빼어남을 경쟁하고, 만개의 골짜기는 빛을 다투는 기세로다.
清代宋宗元《網師園唐詩箋》:奔騰而來,悲壯渾成,安得不推絕唱! 달려오니 비장이 뒤섞여 생기어, 어찌 절창을 밀건가?
清代袁枚《隨園詩話》: 동일한 글 쓰기지만, 문은 짓는다고, 시는 읊는다고 하니, 음절을 외우지 않을 수없더, 그러나 음절이 하나이니, 말을 전하기 힘들다. 소릉는 군산만학부형문에서 군자를 바꾸어 천자를 조에 넣지 않았다. 글자의 뜻은 하나이지만, 이 작은 차이로 친리를 잃었으니, 기타는 가히 유추(類推;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清代盧麰、王溥《聞鶴軒初盛唐近體讀本》:진덕공(陳德公)왈: 붓으로 3, 4글 쓰기는 늙고 성숙하여 정사는 다 잃고, 후반에는 침울하고 맺히여 떨어지기 힘들도다[後半沈鬱,結最纏綿]. 평가하건대: 입을 여니 기상은 만천이고, 이 모두 명비촌세글자의 세력이라. 아랫글에서 자대와 청총[紫台, 青冢]이 또한 구비하였도다. 청총(青冢)이 또한 구비되었으니, 또한 부(赴: 다다르다)자는 상유(尚有: 아직도 있다.)와 독류(獨留: 홀로 남다)는 글자마다 서로 생겨, 함께 거느리기가 같지 않으니, 이리하여 재능이 크고 마음은 세밀하도다.
清末高步瀛《唐宋詩舉要》:오왈(吳曰): 유신, 송옥(庾信、宋玉)은 사인(詞人)의 거물로 자부하지만, 명비에 이르러 비견할 수없다. 그는 방랑하여 같을 수없다. 이 편 끝에 그는 비파에 돌아왔다고 하였는데, 깊고 미묘한 뜻이다. 만약 말하기를, “비록 천재이상의 오랑캐 곡조이니, 이 음을 아는자는 필히 들으리!”, 그런즉 원한은 대면토론하듯이 분명하였겠다. 이는 천재동안 적막함을 스스로 비유함이다.
清末俞陛云《詩境淺説》:청말 유폐가 이르기를: 명비 읊은 시는 많고, 심귀우(沈歸愚)는 이시를 절창이라 추천하니, 그녀의 생평을 감쌓을 수있었고, 창량함이 심하였다. 수구에서 형문(荊門)의 지세를 읊었고, “부(赴)”자를 써서 침착하고 유력했다.

杜甫
Wang Zhaojun - Wikipedia杜甫(712-770). 그의 자는 자미(子美)이고, 스스로 부르기를 소릉야로(少陵野老)라 하였고, 세상에서 칭하기를 두공부(杜工部), 두소릉(杜少陵)이라 하였고, 한족이며, 하남부공현(河南府鞏縣) 현재 하남부공의시(今河南省鞏義市) 사람이며, 당대 위대한 현실주의시인이며, 세상사람이 높여서 시성(詩聖)이라 불렀고, 또 시사(詩史)라고도 불렀다.
두보와 입백을 함께 칭하여 이두(李杜)라 하였고, 다른 두 시인, 이상은과 두목(李商隱與杜牧)을 부르기를 소이두(小李杜)라 구별하였기에 두보와 이백을 이에 합칭(合稱)하기를 대이두(大李杜)라 하였다. 시성 두보는 우국우민(憂國憂民)하고, 인격이 고상하고, 그의 1400여수 시를 보존하여 내려오며, 시의 법도가 정교하고, 중국고전시가중 높이 추앙(推仰)을 받고, 그 영향이 심원(深遠)하였다. AD 759-766년간 성도(成都)에 거주하였기에, 후세에 두보초당(杜甫草堂)을 기념하였다. 여기에 138편 시문(詩文)과 2196조명구(條名句)가 있다.
이곳에서 그림은 두보가 아니고 주인공 왕소군의 모습을 실었다.

 
Kwan Ho Chung - March 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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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31 이강인-손흥민 ‘골 합작’ 한국, 태국 3-0 완승…월드컵 최종 예선 진출 성큼 [2] 2024.03.26 황규정*65 2024.03.27 42
8830 1945년 8월 15일 오후 강릉 홍제정 안마을에서 [2] 2024.03.19 정관호*63 2024.03.24 75
8829 이승만은 왜 김구를 제거 했을까? [1] 2024.03.17 온기철*71 2024.03.18 51
8828 My Grandson [1] 2024.03.15 노영일*68 2024.03.18 105
8827 蜀相(촉상): 촉한 승상 제갈량 [1] 2024.03.15 정관호*63 2024.04.12 58
8826 1945년 8월15일에는 서울에 아무일도 없었다. [1] 2024.03.13 온기철*71 2024.03.14 52
» 왕소군 고향에서 [1] 2024.03.08 정관호*63 2024.03.20 56
8824 정약용; 늙어가면 친구가 점점 없어진다. [5] 2024.03.06 온기철*71 2024.03.08 85
8823 Trump is OK to be a candidate. 2024.03.04 온기철*71 2024.03.17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