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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컬럼| 219. 도망친 염소

2014.10.22 14:04

서 량*69 Views: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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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4월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와 10월의 판교 테크노밸리 사고가 우리 마음을 어둡게 한다. 기사를 다룬 영자 신문에 나오는 'tragedy (비극)'라는 단어가 눈에 밟힌다.

 

 'tragedy' 14세기말경 그 뿌리에 해당되는 불어와 라틴어로 불행하게 끝나는 (unhappy ending) 연극이나 문학작품이라는 뜻이었다. 예술작품은 근본적으로 허구세계를 묘사한다. 그러나 우리 현실의 길목 도처에 뼈아픈 비극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어찌하랴.

 

 'tragedy'에는 슬픈 종말이라는 뜻과 너무나 동떨어진 내막이 있다. 이 말은 고대 희랍어의 'tragos (염소)' 'oide (노래)'가 합쳐진 단어다. 염소 노래? 백조가 죽기 전에 노래를 부른다 해서 'swan song'이 마지막 노래, 연설, 혹은 공연이라는 관용어가 됐지만 어찌하여 염소노래가 비극이라는 뜻일까.

 

 인류 최초의 연극은 비극이었다. 고대 희랍의 비극배우들은 무대에서 염소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었다 한다. 그래서 염소노래가 비극을 뜻하게 됐다는 소문도 있고 게다가 그 당시 연극 경연대회의 최고상이 염소가죽이었다는 관습에서 '염소노래=비극'이라는 등식이 탄생했다는 추측도 있다.

 

 염소가 등장하는 단어가 또 하나 있다. 'scapegoat (희생양)'이 그것이다. 남의 죄를 대신 지는 사람을 뜻하는 이 이상한 단어를 우리말로는 고사를 지낼 때 상에 올리는 고기라는 뜻에서 '고삿고기'라 한다. 이 말은 'escape' 'goat'의 합성어다. 이번에는 '희생양=도망친 염소'라는 등식이 나온다. 왜 염소를 양이라 했나 했더니 염소의 한자어가 산양(山羊)이기 때문이란다.

 

 구약시대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Yom Kippur (속죄의 날)'에 두 마리의 염소를 준비했다. 한 마리는 죽여서 피를 제단에 뿌려 신에게 바치고 다른 한 마리에게는 자리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의 죄를 몽땅 걸머지게 한 다음 황야로 도망시킨다. 나중에 그 염소를 사람들이 절벽에서 떠밀어 추락사를 시킨 후에 그들의 속죄예식은 완전히 끝이 난다. 이렇듯 인간의 속성에는 스스로의 평안을 위하여 꼭 무고한 생물체를 죽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천인공노할 잔인성이 숨어있다. 우리 전설에도 용왕이나 산신령을 위한 제물로 가엾게 죽은 동네 처녀가 한둘이 아닌 것을 당신은 '전설 따라 삼천리'를 통하여 숱하게 듣지 않았던가.

 

 세월호와 판교의 참사는 캄캄한 황야로 사력을 다해 줄행랑치는 염소를 절실히 요구한다. 우리 심층심리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속죄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더운 피를 갈망한다. 금세기 종교철학의 태두, 르네 지라르(Rene Girard, 1923 ~ )에 의하면 예수도 전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벌을 받은 가여운 희생양이었다.

 

'tragedy'는 고대의 염소가 구슬프게 죽어가는 신음 소리를 노래로 미화시킨 결과로 태어난 말이라고 나는 그 어원을 주장한다.

  

 정신분석 차원에서 보면 우리는 대형참사가 있을 때마다 피비린내 나는 살생을 저지르는 대신에 사고 관계자를 직책에서 물러나게 하는 형벌을 위한 절차를 추진한다. 현대인의 직업을 박탈하는 것은 살상이나 다름 없는 아주 세련된 발상이다. 제사장 역할을 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우리의 언론은 사고 책임자가 사퇴를 하는 경위를 세밀하게 추적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사고가 발생하면 평소의 불만을 빌미삼아 한 집단이 희생염소를 물색하는 작업이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 제단에 옆으로 누워 노래하던 슬픈 염소와 우리의 고사상에 정갈하게 얹혀져 실눈으로 웃는 고삿고기 돼지머리가 당신과 내게 시사하는 속죄의식의 비극적 종말이다.    

 

© 서 량 2014.10.19
-- 뉴욕중앙일보 2014년 10월 22일 서 량 컬럼 <잠망경>으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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