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04 08:40
https://www.youtube.com/watch?v=JXlDNWp2Syo
(역사 첸널: 보부상)
http://www.carlife.net/bbs/board.php?bo_table=cl_4_1&wr_id=2486
(Carlife: 조선시대의 육상 교통 기구 각종교통 수단)
조선시대의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는 도로들은 장정 세사람이 나란히 설
수 있는 길이 가장 넓었다고 한다. 요지음 등산로 또는 트레일과 비슷 했을
것으로 추측 된다. 바퀴 달린 수레가 다닐 수가 없었다. 따라서 소, 말 등
짐승이나 사람이 직접 운송 을 맡아야 했다. 보부상은 상인이기도 했지만
도보로 이동 하는 운송의 수단이었을 것이다.
기원전 1500년 은 나라 때 부터 바퀴 살 있는 바퀴를 사용 했음에도 불구 하고
조선의 왕들은 외적이 칩입 하기 용이 함으로 도로를 일부러 정비하지 않 았다고
한다.
전국 방방 곡곡 장시를 돌아 다니는 보부 상들은 세상의 소문은 다 듣고 다녀 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강력 한 조직으로 단결이 잘 되었다. 그리고
충성 심이 강 했다. 대원군은 이 조직을 잘 이용 했다. 병인양요 때 쌀 운반등
프랑스 군을 물리 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대원군에게는 중요 한 정보 조직이
었다.
대신 정부는 이들에게 상품 독점권을 주어 서 시장을 장악 하게 해 주었다.
정부 군에 협조 하여 동학군 진압에 참여 했다. 고종은 이들을 중심으로 보수
단체인 황국 협회를 조직 하여 독립협회에 대항 하게 하였다.
도로를 닦고 정비 하여 화물의 운송을 원활이 하는 것은 경제 발전의 기본이다.
Dow Jones Industrial 의 추이를 알려면 Dow Jones Transportation을 알아 보라고
했다. 바퀴를 무시하고 도로를 정비 하지 않 았던 조선에게 서 근대 산업 국가를
기대 하기는 어려 웠을 것이다. 거기다 정경유착의 적폐 까지 했으니.....
"서양 문물은 물욕을 추구 하여 인륜 문명을 타락 시키므로 배척 해야 한다.
기즉 과학 보다 도가 중요 하고 무보다 문이 중요 하다."
- 위정척사파의 주장
19세기 말 조선은 수구 보수파인 위정척사파가 백성들의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2018.06.05 01:03
2018.06.05 07:29
https://m.youtube.com/watch?v=I0SwvOH4xyM
(YTN Science: 보부상; 조선의 상업과 문화의 중심)
정 선배님은 19, 20, 21세기를 넘나 들면 서 사시 는 것 같읍니다. 직접 들으 시
고 몸소 체험한 이야기 들이 매체를 통 해서 듣는 것 보다 더 생생 하게 느껴 집
니다. 위 YTN video 는 보부상들이 다니 던 길을 잘 보여 줍니다.
한 나라는 서양의 로마 제국과 대칭 되는 나라 였 습니다.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교
나라로 변 하고 중세 암흑기로 접어 들 어 침체 한 반면 중국은 유교 국가로 발전
하여 19세기 초 까지 세계 최 강국 이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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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온의 글에 나온 보부상이란 용어를 보고 어머니의 옛날이야기에서 들었던 보부상 생각이 떠올라서 다음 글을 썼습니다.
내가 어렸을 적 일이라 너무 오래되어서 그 이야기의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보부상이란 글자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마 등짐장사라고 하면 되겠지.
그 후에 이 용어를 본 기억이 없다가 오늘 처음으로 대면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보다 나에게 좀 더 인상을 주는 내용이 있다. 지난번에도 Dr. 온께서
일제가 조선을 침탈하기 전에 한양의 대로는 남자 셋이서 가로로 서서
걸을 수 있는 폭을 가진 길이라고 한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장정 삼인의 ‘횡렬 폭’이라고나 할까?
그러니 당연히 수레로 장거리를 통행할 수 없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겠다.
19세기 말에 우리 집안이 진주에서 한양으로 큰 이사를 하셨는데, 아버지는
아주 어리셨고, 할머니와 아버지는 2인교를 타고 진주에서 한 달 걸려서
한양에 도달하셨다. 그러니 걷지 못하면 2인교나 4인교를 타고 산 넘고 강 건너
먼 길을 이동하셨던 시절이었다.
이와 대조를 할 예를 들겠다.
후한시절(AD 25 – 200) 한시 陌上桑에서 나오는 두 절에서 찾아보자.
使君從南來(태수종남래), 五馬立踟躕(오마입지주)
즉 태수가 남방으로부터 오니, 다섯 필 말은 서서 멈추었네.
다섯 필 말이 이끌던 수레를 탔으니, 장안대로가 얼마나 컸던가!
한번 아래에 실은 사진을 보자.
전면에 가장 좋은 말이 섰고, 그 다음 줄에 네필 말이 있었고,
사군은 마부가 몰 던 수레 뒷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니 그 당시 우리 조상은 고구려에서 환도성으로 서울을 옮기고,
신라에서는 이사금이 즉위할 지음이었다.
장안 대로에서 AD 200년경에 대로를 달리며 뽕따던 미녀를 보고
테수가 수작을 걸었던 중국 후한시절의 정경을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