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19 06:29
이백(李白) 故人西辭黃鶴樓, 煙花三月下楊州
옛 벗이 황학루를 떠나 서쪽으로 가니,
Li Bai You have left me behind, old friend, at the Yellow Crane Terrace,
이 시는 이백이 황학루에서 친우 맹호연과 이별하는 내용을 노래한 시이다. 맹호연을 실은 배가 멀리 하늘가로 사라짐을 보고 있었던 이백의 모습이 눈에 이 누각은 호북성 무창현에 있으며, 등왕각, 악양루와 함께 삼대 명소로서,
작자 이백은 성당시절의 시인으로 중국 최대의 시인으로 꼽힌다. Kwan Ho Chung - September 19, 2014 |
2014.09.20 10:38
2014.09.20 11:50
참 좋은 사와 시를 올리셨군요. 모택동의 보살만은 처음 보았고,
최호의 황학루는 이백의 봉황대와 더불어 유명하지 않습니까?
모택동의 필치와 황학루 앞에 황학이 두 마리나 있어 대단히 보기 좋습니다.
가 보셨겠지요?
2014.09.20 18:35
2014.09.20 19:59
인터넷에 있는글:
여기의 시는 모택동이 쓴것 복사한것 집에 하나 있지요.
"모택동은 그의 나이 32살 풍운의 꿈을 마음껏 펼치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던 불우한 시절에
이곳 귤자주에서 상강을 바라보며 심원춘 장사(沁園春 長沙)라는 유명한 시를 짓는다.
귤자주에 서서 상강을 바라보며 그의 시를 읇어 본다.
長沙
독립한추 상강북거 귤자주두
(獨立寒秋 湘江北去 橘子洲頭)
차가운 가을날 홀로 상강이 북으로 흐르는 귤자주에 서서
간만산홍편 층림진염
(看萬山红遍 層林盡染)
바라보니 뭇 산은 단풍이 들고 나무숲도 층층이 붉게 물드네
만강벽투 백가쟁유
(漫江碧透 百舸争流)
강물은 더욱 더 푸르러 가고 배들은 앞 다투어 나가는데
응격장공 어상전지 만류상천경자유
(鹰擊長空 鱼翔淺底 萬類霜天競自由)
매는 창공을 가르며 날고 물고기 한가롭게 노니나니 만물은 늦가을에 자유롭기 그지없네
창요곽 문창망대지 수주침부
(悵寥廓 問蒼茫大地 誰主沈浮?)
아, 슬픔만 복받치도다 창망한 대지에게 묻노니,
누가 이 세상의 흥망을 주재하는가?"
[귤자주공원에 있는 모택동 흉상] [모택동의 친필 심원춘 장사]
2012 년 가을에 친구들과 아들을 데리고 장사에 이틀을 묵엇지요.
장가계 천가계 들이고 모택동 생가, 소산에 찾어가려고 들렷지요.
유명한 장사 박물관은 수리중이라 문을 닿고, 두보의 무덤을 찾으려 가려햇지만, 정확한 주소를 몰라 기권.
그분의 묘지는 6 개가 있다고 함. 하도 사람들이 자꾸 이장을 해서
이곳의 호남성대학은 모택동인 다녓던 초급대학이엿고
그전신은 주희가 송나라때 쎄웟든 서원에기 연유햇다고 하드군요.
그이름이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인 악록서원(岳麓書院, 지금은 호남성대학의 일부.
학교 입구 광장에는 호남 출신인 모택동(毛泽东) 석상이 서 있고.
이곳에 가면 중국영향을 받아서 조선시대에 세워진 한국의 서원 동영상도 보여주드군요.
아래는 만주에 사시는 한국분의 장사여행기 옴겨온것임니다.
일본의 중국대육 침략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영국의 철학자 Bertland Russel 같은 분이 이곹에 와서 강의도 하고
한때는 모택동이 강서성을 중국에서 때어내 독립을 해야된다는 엉뚱한 생각도 햇든 모양.
이 당시 소련에선 제정러시아가 혁명으로 붕괴되고, 중국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서양을 따라가자면
그곳을 배워야한다는 운동이 일어나
등소평 주은래 모두 불란서로 "Work-Study" 란 프로그람으로 유학을 갓다고 들엇지요.
그때 장개석은 일본 유학가서 사관학교 다닌걸로 기억.
모택동은 외국않나가고 문맹 퇴치 운동한답시고 농민 운동에 가담해 벌써 공산당 지하조직을 시작하든때.
그때가 철도 건설에 일하는 사람등 선동해 파업도 햇든 걸로 기억...
"
호남대학 정문에 들어선 후 한참 안쪽으로 가자 악록서원이 나왔다. 악록서원은 악록산의 청풍협(淸風峽) 아래에 있으며 북송(北宋)의 개보년(976년)에 지어졌다. 악록서원 입구의 양 기둥에는 ‘유초유재, 어사위성(惟楚有材,於斯爲盛, 초나라에 인재가 있어 이곳에서 번성하라)’ 는 대련(對聯)의 문구가 쓰여져 있어 이곳이 2000여년전 초나라 인재의 산실이었음을 웅변하고 있었다.
악록서원의 대문을 들어서자 중국 철학의 향기가 물씬 묻어 난다. 비전공자인 나도 그 향기에 푹 빠질 수밖에 없는데, 하물며 중국 문학이나 철학을 전공한 이들이 이곳을 찾았을 때 그 황홀감은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을까?
이곳의 역사가 중국철학사라 할 만큼 수많은 지식인들이 이곳에서 토론하고, 저술하고, 강의했다고 하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들을 보면 주자학(朱子學)의 창시자 주희(朱熹, 1130-1200), 호상학(湖湘學)의 장식((張栻, 1133~1180), 양명학(陽明學)의 왕수인(王守仁, 1472-1528),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왕부지(王夫之, 1619-1692) 등이다.
공자(孔子)와 맹자(孟子)의 유가사상(儒家思想)은 11세기에 이르러 북송(北宋)의 주돈이(周敦頤, 1017~1073), 장재(張載, 1020~1077), 정호(程顥, 1032~1085)와 정이(程頤, 1033~1107) 형제들에 의해서 성리학(性理學)으로 발전되었고, 이 성리학은 12세기 남송(南宋)의 주희(朱熹, 1130~1200)에 의해 집대성(集大成) 되었다. 이들 다섯명은 ‘공맹주정장주(孔孟周程张朱)’라고 불리우며 유학의 정맥을 잇는 학자로 평가되고 있다.
성리학은 13세기에 이르러 전제군주제 국가인 중국의 통치이념으로 채택되어
청나라 말기인 19세기까지 굳건히 유지되었으며,
향후 조선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쳐 조선왕조 500년의 국가통치이념으로 확고한 위치를 점했다.
또한, 신중국을 세운 모택동 역시 공산주의 사상적 체계를 세우는 과정에서
악록서원에서의 경험이 많이 작용했다고 하며,
특히 그는 이곳에서 초반기 정신적 스승이자 장인인 양창제를 만났다.
모택동을 시작으로 수많은 중국 공산주의 혁명지도자들 역시 악록서원의 철학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호남대학 경내에 있는 악록서원 입구]
대문 뒤쪽의 이문(二門)을 지나자 본전인 강당(講堂)이 나왔는데 좌우에는
주희가 쓴 충(忠), 효(孝), 염(廉), 절(節) 네 글자가 고고한 자태로 학당을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이 곳을 ‘충효염절당(忠孝廉節堂)’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정면 위에는 청나라의 강희제가 직접 써서 하사한 '학달성천(學達性天, 배움으로 하늘의 성품에 이르다)’의 편액이, 그
리고 그 안쪽에는 강희제의 손자인 건륭제(乾隆帝)가 하사했다는 ‘도남정맥(道南正脈, 이곳에서 이루어진 도가
남방에서 가장 정통하다)’의 편액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중앙에 의자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데 주희와 당시 악록서원 원장이었던 장식이 함께 강연을 하던 자리이다.
이곳에서 ‘주장회강(朱張會講)’이라고 불리우는 주희와 장식의 토론이 이루어졌다.
성리학의 두 물줄기가 악록서원에서 다시 합해졌으며,
뒷날 이를 기려 건륭제가 ‘도남정맥(道南正脈)’이란 네 글자를 악록서원에다 친히 써서 하사했다고 한다."
2014.09.20 20:40
2014.09.20 23:05
2014.09.21 11:58
정선배님.
쓰신 애기는 역사책에서 배우지 못한 민초들의 얘기고, 유길준 미국왓든 시절비슷한데, 글로 자세히 써서 후대에 남겨두시길.
100 여년전에 전라도 분들이 하와이에 많이 오셧다는데, 남겨놓은 기록을 보진 못햇고
하와이 가니까 중국사람들이 미국이 하와이를 합병하기 전부터 도착해서 살어온 역사를 카우이라는 섬의 조그만 중국사람 박물관에 갔드니
모아두엇더군요. 박물관이래야 카나다서 공부하신 중국 할머니가 혼자 앉아 계시는 조그만 개인집 같은 건물이고
수장품은 그당시 문서 사진 중국 노동자들이 집단취사하든 주방 도구들 등이 있더군요.
손문의 형이 카우이에 이민와서 카우이에 사탕수수 농장 자리를 잡엇기 때문에
손문이 광동에서 청나라 뒤집으려고 혁명을 일으킬때 이곳에 형한테 6 차나 방문해 자금을 얻어갔다고 하드군요.
조선 사람은 주로 오하우 섬에 많이 왓다는데
온사람들이 글을 쓸줄 모르는 사람들이엿는지, 수기같은걸 보진 못햇지요.
제가 漢字를 아직 않 잊은 이유는 몇 주전에 여기 어디 썻읍니다 .
방형:
2014.09.21 14:20
Even if I might have another life, I don't think I can reach your
Depth of All-Round Knowledge as you have, Minn sunbaenim.
But
several years ago, maybe more than decades ago, I read
Edgar Snow's "Red Star Over China(1937)" to take a glimpse
of Mao's life - which was admired deeply by another Revolutionary,
Che Guevara.
Here's from wikipedia - about "Red Star Over China(1937)";
http://en.wikipedia.org/wiki/Red_Star_Over_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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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 너 (친구) / 이해인 [10] | 2013.11.15 | 홍초미#65 | 2013.11.15 | 2833 |
황학루(黄鹤楼)는 중화인민공화국 후베이성 우한 시의 양쯔강
(양자강가 武漢市) 강변에 있는 유명한 역사적 누각으로 악양루, 등왕각과 함께 중국 《강남 삼대명원》의 하나로 손꼽힌다.
이곹에 올라가면 양자강 전망이 좋고 벽에는 수많은 문인 묵객들이 남긴 시가 새겨진 현판이 있고,
여기에 모택동이 초야에서 도망 다닐때 (1927년) 황학루에 올라와서
다른 문인 묵객의 예를 딸아 보살만이라는 형식의 시를 하나 남긴게 있고
지금 황학루 올라가면 가면 모택동 시를 돌에다 친필로 쓴것 새겨 놓은게 있을 겁니다.
모택동(1927년 봄)
망망한 장강(長江)이 갈래지어 흐르는 중원(中原)
여기에 아련히 걸친 한 가닥 철로 남북을 잇고,
강산엔 안개비 자욱한데
이마저 구사(龜蛇) 두산이 시야를 가리는구나.
황학은 어딜 갔는지 알까?
옛 사람이 노닐었던 이 빈터뿐인 사연을.
한 잔 술 강물에 흩뿌려 시름을 달래건만
내 마음 그 물결에 일렁대기만 더하네.
<菩薩蠻 : 黃鶴樓>
毛澤東(1927年 春)
茫茫九派流中國, 深深一線穿南北.
煙雨莽蒼蒼, 龜蛇銷大江.
黃鶴知何去? 剩有遊人處
把酒酹滔滔, 心潮逐浪高
황학루에 있는 모택동 의 시 황학루
아래 연결 누르면 시와 근처 풍경이 보임니다.
http://v.youku.com/v_show/id_XMzMzNjAzMjA4.html
각 층마다 보이는 풍광이 다르며, 황학루의 꼭대기에서는 양쯔강을 가장 잘 조명할 수 있다. 외양은 고대의 황학루이지만, 잦은 파괴와 중수로 인해 최근에 중수되어 현재는 내부에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어 있다.
황학루에 관련된 전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왕자안(王子安)이라는 선인이 학을 타고 내려왔는데, 이를 기념해서 황학루를 만들었다는 것과 비문의(費文禕)가 선인이 된 이후 황학을 타고 이곳에 내려와 종종 머물렀다는 전설 등이 있다.황학루는 중국 역대 내로라하는 시인들이 그 천하절경을 노래했다. 역대 명사로는 최호(崔顥), 이백(李白), 백거이(白居易), 가도(賈島), 육유(陸遊), 양신(楊慎), 장거정(張居正) 등이 문예를 뽐냈으며, 그 중 8세기의 유명한 시인 최호의 시 등이 걸려 있다. 최호의 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