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29 12:16
https://m.youtube.com/watch?v=xd4hKdABKA8
(봉촌선생; 이범교 인문학 교실: 국공내전과 조선 의용군)
1945년8월9일, 나가사키에 두번 째 원폭이 투하 되던 날, 쏘련군이 만주 일본
관동군을 향해서 진입 했다. 투루만과 장개석의 반대를 묵살 하고 전리품을
모택통 군에게 넘겨 주고 철수 하는 쏘련군 뒤를 그들이 따르 게 하여 슬그머니
만주를 공산군에게 넘겨 주었다. 쏘련은 이 기회를 십분 이용 하여 재정 러시아
때부터 숙원 이었던 조선의 반을 차지 했다.
중국 본토에서는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장개석은 조선인의 항일 운동에 대한
인식을 달리 하고 임시정부와 독립군의 활동을 적극 도왔다. 한편 만주 에서는
일본군의 철저한 진압 때문에 독립군 들이 효과적으로 전투를 할 수 없게 되자
중국 공산 군에 합류 하여 항일 전쟁을 했다. 이들이 조선 의용군 이다.
해방후에 대부분의 장개석의 도움을 받던 사람들은 남쪽으로 북쪽의 공산군과
같이 일본군 과 싸우던 사람들은 북쪽으로 돌아 갔다.
2018.07.29 22:07
2018.07.29 23:07
Sorry again and I deleted my comment.
2018.07.30 09:14
고구려, 백제가 신라와 당에게 망한 이후로 1200 여년 동안 계속 된 중국
의 영향은 조선이 망 한 후에도 계속 되었다. 그야말로 지긋한 지긋 한 중
국 이었다. 장개석과 모택통으로 갈라져 싸우는 중국의 판국에 조선 독립
을 위해서 싸우던 사람들은 두 패로 갈라 졌다. 조국을 상실 한 이들은 공
동의 적 일본과 싸우는 중국에 가게 되었고 그들의 패 싸움에 말려 들 수
밖에 없 었다.
1931년 만주 사변 후 상하이 헝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 요인을
죽이거나 크게 부상 당하게 한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장개석을 크게 놀라
게 했다. 그동안 조선 사람들을 자기 편이라고 생각 하지 않았던 태도를
바꾸어 한국 임시정부를 적극 적으로 도와 주기 시작 했다. 중일전쟁 동안
일본 군에 밀려 후퇴 하는 장개석 군대를 따라 임시 정부도 옮 겼다.
일본 군에게 쫒기는 김구를 보호 해 주 었다. 중국 본토에서 활동 하던
독립군이나 임시정부 인사들은 대부분이 해방 후 남한으로 들어 갔다.
만주는 한동 안 조선 독립군의 근거지 였고 주요 활동 무대 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철저한 진압으로 독자적인 활동이 어렵게 되자 중국 공산당 군인
팔로군에 합류 하여 항일 전쟁에 참여 했다. 조선 의용군이 이들의 대표적
인 독립군이다. 국공 내전 때 모택동 군에 소속 되어 국민당 군과 싸웠다.
이들은 6.25때 인민군에 합류 하여 경험 많은 정예 군으로 혁혁한 공을 세
웠다. 모택통의 군대는 조선에 들어 와 위기에 처해 있는 옛 전우를 구했다.
목전에 있는 통일을 방해 한 것이다.
일제는 공산주의를 무자비하게 탄압 했다. 그리고 해방 후의 미국은 반공을
대한 민국 국민들에게 철저 히 교육 시켰다. 이 두 시대를 거친 대한민국
사람들은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의 존재를 적으로 간주 하지만 역사적인
이해는 많이 부족 하다. 반면에 북한은 정 반대일 것으로 추측 된다.
앞으로 남북 교류가 활발 해지고 남북의 이해 관계가 같아 지면 중국의 존재가
다시 부각 될 것이라고 생각 한다. 지난 세월을 되 돌아 보고 시행차고가 없도록
각별 한 주의가 요망 된다.
2018.07.30 23:30
To add to what happened to 독립군 after 8.15 해방...
남한으로 귀국한 독립군들은 이승만에 (미국) 의해서 숙청, 말살되었고
북한으로 간 독립군들은 김일성 (소련)에 의해서 숙청되어 사라졌지요.
결국 애쓰고 싸운 독립군들은 햇볓을 끝내 못본채 사라지고,
그대신 엉뚱한 강국의 꼭두각시들이 남한, 북한을 계승한것이지요.
독립군들의 투쟁은 이들에 의해서 억지로 숨겨져서 우리는 자라면서 이들의 공적을 모른채 살았읍니다.
독립군들의 활동사실은 이승만 정부에 의해서 그 출판이 은폐, 금지되었지요.
As we all know, 역사는 이긴자 (승자)들이 자기본위로 써진다는 사실이지요 (regardless of the truth).
그러나... 이승만, 김일성들이 사라진 후에...
최근의 한국좌파 (반 친일파)들과 Media인 (좌파)들이 이 사실을 들쳐내기 시작한것 아닙니까?
이 사실은 최근 한국영화 "암살" (2015, 최동훈 감독)에서 잘 나옵니다.
(I don't mean to say that 최동훈 is one of the 좌파. I do not know which side he is.)
I did not know the tragic stories until I saw the movie.
Am I right on this?
2018.07.31 00:30
https://m.youtube.com/watch?v=F46BTmcHqRI
(암살)
https://m.youtube.com/watch?v=iRrUd7hXbkk
(영화 밀정의 역사적 배경)
의열단과 김원봉을 주제로 한 영화로 암살과 밀정 이 있 습니다. 아주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좌파 독립 운동가였던 김원봉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알려 주지 않아서 국
민들이 전혀 모르고 지냈던 사실을 일 깨워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열혈 독립 운동가들은 좌,우로 갈라져서 활동을 했지만 근본적으로 순수한 국수주의자 들이
었 습니다. 냉전 시대에는 이들은 숙청의 대상이 었 습니다.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모두 자기
입맛에 맞는 정권을 세워 놓고 조정 하기가 힘들기 때문 이었 습니다. 우리나라도 이 원칙의
예외는 아니 었 습니다.
장개석과 모택동이 싸운 국공 내전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대결 이었 습니다. 1945-1949,
4년이 갈려서 모태통이 이겼지만 자본주의가 완전히 소멸 되지 않고 타이완에 남아 있 습
니다. 그 후 중국은 독재적 자본주의로 변 했 습니다. 결국 50% 이상 타이완에 접근 했다
고 볼 수 있 습니다. 어떤 “주의”가 완승 할 것인가는 두고 볼 일입니다.
중국에서 4년동안 국 공이 싸우는 동안 한반도에서는 북은 공산 주의 남은 자본주의로 나라 만
들기에 분주 했 습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두 이념의 대립 구도는 불가피한 충돌을 연기 하고
있을 뿐 이었 습니다. 냉전 시대 최초의 열전 한국전쟁은 모택동이 승리 한지 채 일년도 않되어 시작
되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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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nk you for pointing out the typ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