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01 17:48
https://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60200150001
최부의 표류기: 한글 번역
http://www.bonhd.net/news/articleView.html?idxno=5145
1989년 최부의 후손인 최기홍 선생이 번역한 <금남 표해록>에 소설가 이병주가 "역사를 전문으로 하는 학자들이 이만한 걸작을 완역하지 않았을 만큼 게을렀다는 사실을 깊이 반성하고 자책해야 할 것이다."라는 따가운 질책을 했다. 이병주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하멜표류기>와 더불어 <표해록>을 3대 여행기로 들었다.
明淸시대 使行들이 중국에 가서 보고들은 견문과 선진문물에 대한 기록을 朝天錄 혹은 燕行錄이라고 한다. 현재 발굴된 407건의 연행록이 북경까지의 사행기록인 데 반해, 漂海錄은 해상에서 표류하다 중국의 강남지역에 표착한 뒤 북경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온, 색다른 서술을 보여 준다.
출처 : 본헤럴드(http://www.bonhd.net)
귀국 직후 성종의 명을 받아 <금남표해록>을 3권으로 기록했다. 이 책에는 중국 연안의 해로와 기후, 산천, 도로, 관부, 풍속, 민요 등이 소개되어 있다. 특히 최부는 수차의 제작과 이용법을 배워와 충청도 지방의 가뭄 때 활용하도록 했다. 1498년 무오사화 때 김종직 문하인 이종준, 이구, 김굉필, 박한주 등과 함께 붕당을 이루어 국정을 비난했다는 죄명으로 함경도 단천에 유배되었다가 1504년 갑자사화 때 처형되었다. 1506년 중종 즉위와 동시에 신원되어 승정원도승지로 추증되었다. <금남표해록>은 국내에서 한문과 한글본으로 간행되었고, 일본에서도 <당토행정기>나 <통속표해록> 등으로 출간되었다.
출처 : 본헤럴드(http://www.bonhd.net)
2021.11.01 18:11
2021.11.02 04:59
... 3월 15일. 요동사람 진기,왕찬,장경,장승,왕용,하옥,유걸 등이 장사 일로 여기에 도착했는데, 우리가 온 것을 듣고 청주,엿,두부,떡을 들고 와서 우리를 대접했다. 진기 일행이 말했다. "우리 요동성 지역은 귀국과 이웃해 義가 한집안과 같습니다. 오늘 다행히 객지에서 서로 만나게 되어 감히 약소한 물품으로써 예를 표합니다."
내가 말했다. "그대들의 땅은 고구려의 옛 도읍지요. 고구려는 지금 조선의 땅이니 땅의 연혁은 비록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실상은 한나라와 같소... 후한 은혜를 입으니 마치 한집안 일가친척을 본 것과 같소..." 출처 : 본헤럴드(http://www.bonhd.net)
이부분을 보면, 그때도 요동은 고구려의 옛 도읍 "조선의 땅"으로 간주했음을 알수있다.
따라서 그때 사람들이 고구려가 조선에 속했다고 믿는 것을 알수있다.
이 대목은 오늘날 CCP의 동북공정을 부인할 수있는 증거가 아닌가?
또 그당시의 사람들이 얼마나 유교에 빠져있음을 알수있다.
(Amazing stupid obsession at today's standard!!) - by WM
2021.11.02 08:54
또 묻기를,
“처음에 그대들을 왜선(倭船)으로 간주하고 위협·겁탈하여 사로잡아 죽이려고 하였소. 그대가 만약 조선인이라면, 당신 나라의 역대연혁·도읍·산천·인물· 속상(俗尙)· 제사의식· 상제(喪制)·호 구·병제· 전부(田賦)· 의관제도를 자세히 써 오시오. 그것을 여러 기관에서 대질하여 옳고 그름을 따질 것이오” 라고 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연혁과 도읍에 대해 말하자면 곧 시작은 단군으로 당요(唐堯)의 시대와 같았고, 국호는 조선이며 도읍은 평양으로 대대로 천여 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 후 주(周) 문왕(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고 평양에 도읍하게 하니, 팔조(八條)로서 백성을 교화하였습니다. 지금 조선사람이 예의로써 풍속을 이룬 것이 이 때부터입니다. 그 후 연인(燕人) 위만이 망명하여 조선으로 들어왔는데, 기자의 후예인 기준(箕準)을 축출하니 기준은 마한으로 달아나 그곳에 도읍을 하였다. 그 사이에 혹은 구한(九韓), 이부(二府), 사군(四郡), 삼한(三韓)이 있었는데, 연대가 까마득하여 모두 다 서술할 수가 없습니다.
서한(西漢) 선제(宣帝, BC74~BC49) 때에 이르러 신라 박씨가 처음으로 나라를 세웠고, 고구려 고씨· 백제 부여씨가 서로 연이어 일어나니, 옛 조선의 땅이 세 부분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신라는 동남쪽에 웅거하여 경주를 도읍으로 삼았고, 고구려는 서북쪽에 위치하여 요동과 평양에 도읍하였는데, 여러 번 그 도읍을 옮기어 그 땅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백제는 중서남쪽에 자리잡고 직산(稷山)·광주(廣州)·한양·공주·부여를 도읍으로 삼았습니다.
2021.11.02 09:22
최부는 김종직 문하에 있던 사림파 사대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1498년 무오사화는 연산군 때 훈구파가 사림파를 숙청한 사건
이다.
성종은 훈구파를 홀대하고 사림파를 중용 했다. 훈구파는 세조
반정 세력을 말한다. 물론 개국때부터의 중신을 모두 훈구파라
고 할 수 있으나 성종 때의 훈구파는 단종을 폐하고 세조를 왕으로
만든 세력이다. 이들은 많는 토지를 불법으로 차지 하는 등 왕도 어찌 할 수
없는 권력을 휘두루며 부패를 저질 렀다. 성종은 부패척결을
목표로 훈구파를 제거하고 사림파를 등용하는 개혁을 단행 했다.
그러나 훈구파는 불교, 도교등 유교아닌 다른 사상을 표용하고 좀더
독립적인 조선을 지양 했고 과학등 실용적인 학문을 장려 했다.
반면에 사림파는 불교, 도학을 철저히 배척하고 성리학 만이 옳은
학문이라는 흑백논리에 집착 했다. 인성에 대한 학문이외에는 다
옳지 않은 학문이라고 하여 과학과 상공업등을 천시 했다. 소위
위정척사파의 시작이다.
조선의 당파는 사림파에서 시작 했다. 임진전쟁이 일어나던 선조
때에 동인과 서인의 어리석은 도요또미 히대요시에 대한 논쟁의
근원이 사림파이다. 이때 조선의 성리학도 최고로 발달 한다.
유명한 이이와 이황이 활동하던 시기 이다.
동인은 망하고 서인이 소론과 노론으로 갈라지고 결국 노론만이
끝까지 남아서 위정척사파를 형성하고 일본에게 나라를 바친다.
최부가 표류하던 1488년은 15-16세기 항해 시대이다. 1492년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서인도제도에 오고 1521년에 마젤란이 필
립핀에 도착 했다.
이무렵 아시아에서는 왜구에 시달리고 있었다. 명나라는
왜구의 출현을 방지하기 위해서 외국배가 항구에 들어와
무역을 하지 못 하게 했다. 해금령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항구에 사는 중국인들은 무역이 생업이었다.
주민들은 왜구로 분장하고 해적질에 나섰다. 한동안
동남아와 중국 연안에서는 일본사람 아닌 원주민이
왜구로 변장한 해적들이 성행 했다.
고려와 조선은 세금으로 거두어 들인 곡식을 배로 운반 했다.
왜구는 이배를 공략하여 곡식을 약탈 했다. 고려와 조선은
세금 수송선을 보호 하기 위해서 안간 힘을 썼다. 자연히 수군이
발달 했을 것이다.
본인은 이순신이 아닌밤중에 홍두깨 처럼 어느 날 갑짜기
나타나서 일본 수군을 완전히 제압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다.
"조선수군"의 저력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을 아직 찾지는
못 했지만....
2021.11.02 16:37
당신네 나라는 무슨 비결이 있어서 수·당의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소?”하니
나는 말하기를,
“모신(謀臣)과 맹장(猛將)이 병사를 지휘하는데 도리가 있었으며, 병졸 된 자들은 모두 다 윗사람과 친하게 섬기며 장수를 위해 죽기 때문에 고구려는 작은 나라였으나, 충분히 중국의 백만 대군을 두 번이나 물리칠 수 있었소. 지금은 신라·백제·고구려가 한 나라로 통일되어, 인물은 많고 국토는 광대해져 부국강병 하오. 충직하고 슬기로운 인재를 수레에 싣거나 말[斗]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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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는 나주 사람으로서 문과에 급제하여 제주도 추쇄경차관
으로 일을 하던중 부친 상을 당하여 급히 제주도에서 나주로
가야 했다. 1488년 성종 때였다. 나쁜 날씨에도 불구 하고 제주도
를 떠났다. 그러나 풍랑를 만나서 배가 표류 했다. 동남아 섬에서
왜구들에게 발견되어 곤경을 겪었으나 무사히 명나라 해안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명나라은 그를 잘 보호 하여 조선으로 돌아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