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3 12:01
2021.02.13 18:05
2021.02.13 20:56
https://www.voakorea.com/korea/korea-politics/korean-war-lee
그의 이름은 올해 91살의 이종연 변호사. 한국 국군의 통역장교로 미 해병 1사단에 배속돼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작전, 장진호 전투 등 한국전쟁의 기념비적 전투에 참전했던 역사의 산 증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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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병대가 비교적 큰 피해 없이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퇴각 할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중공군이 퇴각하는 미군을 추격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 었다.
1. 중공군은 많은 병력을 동원하여 똑같은 곳으로 돌격했다.
2. 기다리고 있던 미해병은 월등하게 우수한 화력으로 돌격하는
중공군을 사살 했다. 미군1명이 죽으면 중공군 10명내지 50명이 죽었다.
3. 영하 30-4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에 양군이 모두 견디기 힘들었지만
보급이 형편없는 중공군의 피해 더컸다. 중공군 포로들의 피부는 육포 같았다.
4. 중공군은 부족한 보급을 미군의 보급 창고를 약탈하거나 노획한 장비로 충당
할려고 미군 보급기지를 파괴하지 않았다.
5. 소련, 영국, 미국에서 만든 무기등 종류가 다른 무기로 무장하고 있어서
고장을 수리하거나 탄약을 보급하기가 힘들었다.
6. 계급이 없어서 졸병들 까지 세세한 작전계획을 알고 있었다. 이들이 미군
에게 잡히면 작전계획이 모두 누설 되었다.
만약 미군이 전면 후퇴하지 않고 워커 장군의 제안대로 평양 북쪽에서
조금만 버텼으면 한국전쟁은 전혀 다른 양산으로 끝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